퇴근 시간 학교 건물 가장 외진 곳 음악실에서 선생님들이 모였다. 아이들 책상 사이사이로 서있는 선생님들 손에는 악보 한 장이 들려 있고, 음악 선생님의 반주가 시작되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의 가야할 길 그 아무리 멀다고 해도
나는 떠나리라 후회 없이 미련도 없이
나의 가슴 속에 새겨놓은 옛 사랑 두고
다시 떠나가리 나의 길 찾아

노래를 부르는 데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이번 여름에 퇴임 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해 선물로 노래를 준비하였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는 수없이 들었지만 직접 부르려니 음(音) 익히랴, 가사 익히랴 정신이 없다. 정신없는 중에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돈다. 이러다 퇴임식에서 펑펑 울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연습을 거듭하자 다행히 요동치던 심정은 가라앉았다.

해마다 퇴임식을 봐왔지만 올해 느낌은 다르다. 마음으로 존경하는 선배 선생님들의 퇴임은 아쉬움과 허전함이 크다. ‘My Way’의 가사를 떠올려 본다. 생의 마지막과 마주하는 순간, 한평생 외길을 살아오며 언제나 내 방식대로 살아온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노래에서 느껴진다. 퇴임을 눈앞에 둔, 네 분의 선생님도 누구보다 소신껏 교사의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다.

아직 내게는 교사로서 살아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들이 더 많다. 후회 없을 만큼 내 방식대로 해나가고 있는가? 문득 궁금해진다. 얼마 전 한 인문학자의 강연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주인으로서의 삶과, 다른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노예로서의 삶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늘 들어왔던 말이 내 마음속에 쑥 들어온 순간 나는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나의 교직생활은 주인으로서의 삶인가, 노예로서의 삶인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교직이 아닌 다른 길을 꿈꿨다. 그러나 지금 교사로서의 삶이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길이 좋다. 이제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정년을 맞이하고 싶다.

추주연(수곡중 교사)
퇴임식이 시작되었다.
평생 걸어오신 교직 생활의 마지막 인사에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어떨지 염려가 되었다. 의외로 아이들의 숙연한 모습을 보니 그 마음들이 예쁘고 대견하다. 학생들이 준비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선생님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짧은 연습기간에 가사를 잊어버릴까 노심초사했던 것이 무색하게 노랫말이 마음 깊이 와 닿고 가슴으로 불러진다. 노래를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점점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이의 표정이 울상이다. 유빈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화정이도 울기 시작한다.

네 분의 선생님께 지난 삼십 여년의 시간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좌절을 겪으셨으리라.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도 느끼셨겠지. 후배들이 부르는 ‘My Way’를 들으며, 울먹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떤 마음이실까? 마지막 아이들의 인사를 받는 선생님들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싶지만 한 곡의 노래에 그 분들의 외길 인생을 담는다. 아이들과 함께 쓴 편지에 소박하고 진솔한 감사의 마음을 담는다. 그렇게 마음으로 보내드리고, 가슴에 그 모습을 새긴다. 나에게도 언젠가 올 날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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