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한 집에서 알콩달콩

 

 

 

 

 

 

아름다운 에스테틱의 아름다운 가족

자녀 넷을 다 키우고 4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도전한 피부관리 전문가 에스테티션이 된 이란순 원장. 1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원장은 이 일을 선택한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행복하다. 인연일까? 막내아들이 데려 온 결혼 상대자도 이 직업을 갖고 있었으니 이 원장은 그 며느리와 같은 샵에서 원장과 부원장으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 원장은 충남 대천이 고향이다. 구순이 넘은 친정 엄마는 아직도 고향에 살고 있다. 결혼 전 공무원이었던 그녀는 조치원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던 신랑이 “부부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된다”라는 말에 따라 직장을 그만 두고 신랑 옆으로 왔다. 딸 둘을 낳고 주저하던 중 딸만 두었던 친정 엄마가 “아들이 있어야 한다”며 “아들 낳으면 무조건 다 키워주겠다”고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다행이도 내리 아들 둘이 태어났다.

   
 
아이 낳고 키우느라 내 몸 돌볼 시간 없어

요즘이야 산후조리원이 있어 편하게 몸조리 하지만 그 시절은 아이 낳고도 바로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아서 나이 먹어 몸이 안좋은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엄마들이 그리 했듯이 이 원장도 고만고만한 아이 넷을 연달아 키우다 보니 자기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몇 년을 내리 아기를 업어대고 기저귀 손빨래하고 집안일을 하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픈 몸을 치료받기 위해 에스테틱 샵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하다 큰 효과를 본 이 원장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후 아예 이 직종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지만 본인이 효과를 크게 보고 미래 전망이 있다는 확신으로 서울로 다니며 열심히 했다. “요즘은 에스테틱이 사치가 아니고 스트레스 받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건강 차원에서 많이 다녀요.”

자격증을 따고 샵을 운영하던 중 이 원장은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 고민하다 서울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딸에게 전망이 좋다고 이 일을 권유했다. 하던 일을 접고 이 분야를 공부하라는 엄마 말에 처음에는 수긍하지 않던 딸도 점차 마음이 바뀌어 공부한 후 자격증을 따 청주에 내려와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능력 있는 딸은 샵을 잘 꾸려나갔다. 그런데 엄마 때문에 주말부부를 했던 딸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시기가 되자 다시 서울로 갔다.

 
아들이 데려온 며느릿감 시어머니와 직업 같아

이 원장은 지금 며느리와 함께 이 일을 하고 있다. 인연인지 막내아들이 데려온 며느릿감이 에스테틱 일을 하고 있었다. “아들이 여자 친구가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간호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피부과에서 이 계통 일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결혼 후 바로 우리하고 사는데 며느리가 정말 착해요. 애들이 클 때까지는 우리와 같이 살고 싶다고 하네요. ” 보통 며느리들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지만 사람은 상황이 다 다른 법이니, 며느리는 부모를 일찍 여의어서 시부모를 부모처럼 생각하고 산다 하니 이 또한 서로에게 얼마나 잘된 일인가.“ 

금천동에 살다 산남리슈빌에 입주한 그녀는 샵을 세 얻으려고 하다 세가 너무 비싸 주택가에 있던 땅에 건물을 지었다. 이곳에서 막내아들 내외와 손주 둘과 함께 사는 그녀는 마냥 행복하다고 한다. “며느리는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큰 문제없이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보내고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아들내외와 이쁜 손주들을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일생을 허튼 세월 보내지 않고 열심히 보낸 그녀는 큰 거 바라지 않고 며느리가 원하면 이 샵을 물려줄 생각이다.

 
주변 돌아보는 봉사의 삶

이 원장은 다만 나만의 행복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이도 돌볼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독거노인 반찬봉사 ’에 몇 년 째 후원회비도 내고 한 달에 두 번은 직접 가서 반찬도 만들고 배달도 한다. “힘들텐데 괜찮냐”고 했더니 보람 있단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산남동 주택가에 사는 독거노인에게 반찬배달을 하는데 갈 때마다 어르신이 없어서 문 입구에 걸어놓고 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딱 만났는데 천 원짜리 한 두 장을 주시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거예요. 그 분에게는 그 돈이 작은 게 아닐텐데...” 이 봉사는 처음에 남편이 먼저 시작했다. 이 원장은 다니는 교회에서도 장례팀장을 맡아 봉사 한다. 상이 자주 있어 날마다 장례식장 가다시피 한단다. 마지막 가는 이의 명복을 빌어주는 만큼 복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며느리를 만났다. 이름은 장선미(34), 이 샵의 부원장이다. 야리한 모습의 속눈썹이 긴 조용한 분위기다. 직장생활 하며 친한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 빨리 결혼해야 된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친구 소개로 만난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둘 다 무뚝뚝한 편이라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인연이 될라고 그랬나 봐요. 세심하게 챙겨주는 면이 있어요. 피부관리실에서 5년, 피부과 병원에서 5년 근무했는데 결혼 후 아이들 키우다 정식으로 샵에 나온건 일주일도 안돼요. 집에 있다 나오니 자신감도 떨어지지만 열심히 배워서 잘 해야죠” 시부모님과 사는것 괜찮냐고 물으니 살짝 웃는다. “장단점이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저희들 자립 할 때 까지 살게 해 주시고 아이들도 하루 종일 엄마하고만 있는 것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랑 있으니 더 좋구요. 아버님이 정도 많으시고 아이들을 많이 예뻐해 주세요. 당분간은 분가하지 않고 같이 사는게 좋아요.”

가족 우애가 좋아 일 년에 서 너 번은 여행을 간다고 하는 이 원장은 “자식이 넷인데 네 자녀가 각각 둘씩 아이를 낳아 손주가 여덟이다. 한꺼번에 모이면 시끌벅적 정신없지만 그것이 사는 재미 아니겠느냐”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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