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임원에서 학원차량 운전기사로
아이들과 놀며 소통하는 사랑의 수호천사

▲ 원래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김종국 선생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지 항상 생각한다고.
   
며칠 전 한 어머니로부터 마을신문에 전화가 왔다. 본인의 아들 하성언(샛별초5) 학생이 용술관 합기도에 다니고 있는데 차량운전 해 주시는 분이 너무 친절해서 마을신문에 꼭 소개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 어머니는 “눈이 올 때는 아이들과 함께 눈싸움도 하고 아이들에게 간식도 사주며 차량 대기 중에는 잠깐 틈에 아이들을 보살피며 놀게 해주는 좋은 모습을 여러 번 보며 참 감동스러웠다”며 “그런 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며 보살피는 것 같다”고 했다. 합기도 실장과 통화 후 김종국 선생과 만나기로 한 도장으로 갔다. 용술관 합기도 관장과 실장, 아이들은 그 분을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 아이에게 즐겁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듯 했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는 본디 서울 사람이라고 한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전에 있는 유명 구두 외주 제조업체 부사장을 역임했고 2012년 12월31일 후배들을 위해 자진 퇴임을 했다. 직장 때문에 대전으로 다닐 당시 집은 용암동이었는데 아들이 다니는 교동초에서 아버지회 회장 2회와 운영위원장을 3회 했다. 본인의 아들도 사랑을 많이 주며 키웠지만 성격상 원래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 있으니 몸이 이상해지더라. 내가 지금 60인데 능력과 상관없이 오라는 데가 별로 없다. 이왕이면 젊은 사람을 채용하려 하지 60된 사람을 쓰겠느냐. 그러던 차에 나한테 용기가 있더라. 힘든 일은 해보지 않아서 운전을 생각했는데 작년 설 턱 밑에 연휴 끝나고 한 신문에서 이곳 채용광고를 보게 돼서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 지금 집은 용정동이고 부인과 함께 산다. 출근하기 전 오전에는 근처 명암 저수지를 돌며 운동을 한다고 한다.
 
김종국 선생은 월요일~금요일(오후2:30~6:30)까지 아이들을 태우고 차량운행을 한다. 면접 볼 때 관장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달라고 했다. 나도 아이들을 좋아해서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내가 RT 출신이고 100여 명이 넘는 중소기업 임원을 오랫동안 하며 체계적인 부분이 있다. 이것을 잘 살려서 어떻게 하면 도장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했다. 나는 물론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차량 청소도 직접 깨끗이 하고 관장 부인인 실장이 유아타임 아이들을 태우고 차량을 같이 탈 때는 좋은 얘기를 많이 한다. 부부가 내 말을 잘 경청하고 참조하는 것 같아 도움이 되려고 많이 노력한다”고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땐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애들을 대하니 마음이 틀려지더라. 철학적인 생각을 가지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애들과 거친 애들이 있는데 거친 애들은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겠더라.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 내 애들 키울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애들에 대한 끊임없는 짝사랑을 많이 했다. 손주처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니 애들이 느끼더라. 어른으로서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어른같이 행동하지 말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애들처럼 대화하자고 생각했다.”

▲ 김종국 선생을 만난 건 아이들에겐 커다란 행운이다.
 

 

 아이들은 어른에게서 배운다

“요즘 아이들이 드세고 버릇이 없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이들은 당연히 버릇이 없다. 학원을 보내는 엄마들 나이대가 보통 30~40대다. 그 중 30대 후반~40대 초반이 학생 때 소위 처음 신세대라고 불렸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교육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세대가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열심히 지원은 했지만 방목하면서 애들을 콘트롤하는 것이 약하다. 그래서 애들이 버릇이 없다. 세대차이라 생각하지만 애들이 이렇게 크는 것이 걱정은 된다. 세상이 각박해진다. 나는 애들 얘기는 토를 달지 않고 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차에서 애들하고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눈높이를 맞추려고 한다. 버릇없는 아이는 그 자리에서 뭐라 하지 않고 다음에 또 그러면 앞으로 주의하라고 하며 조용히 반복해서 일러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말귀 잘 알아듣고 좋은 모습으로 변한다. 어떤 애들은 여러 명 내가 자기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에게서 배운다. 어른이 잘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면 된다.”

얼마 전 이쪽 계통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과 소주 한 잔을 했는데 그 사람이 “ 그 드센데서 어떻게 잘 버티고 있네. 어떻게 버티느냐. 용하다”고 했단다. 이곳의 무엇이 드세냐고 했더니 산남동 엄마들이라고 한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야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니 잘 모르겠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각이나 일하는 분들은 그렇게 느끼나 보다. “1년 동안 경험했는데 제가 느낀다. 처음엔 젊은 사람인데 나한테 하대하는 엄마가 있었다. 운전기사에 대한 고정관념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큰 동요 없이 꾸준히 내 방식대로 성심을 다해서 대하고 일했다. 그래서인지 결국엔 돌아서고 인사하더라. 60년 살 동안 직원들도 그렇게 관리했다.” 용술관 합기도와 아이들은 선생님 땜에 당분간은 해피 할 것 같다고 하자 “그렇잖아도 여기 다닌 지 몇 년 된 애들 엄마들이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더라. 내가 온 이후 학원생들도 2배 가까이 늘었다고 들었다. 기분 좋은 일이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본인의 아들 하성언(샛별초5) 학생이 용술관 합기도에 다니고 있는데 차량운전 해 주시는 분이 너무 친절해서 마을신문에 꼭 소개하면 좋겠다고 하신 하성언 어머니와 성언이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