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월 신규고객 200여명, 연 8500여명 유치
공동문화쿠폰 실용화로 살아있는 시장 거듭나
 
<가경 터미널시장>
쌀쌀한 겨울바람을 온 몸에 느끼며 가경 터미널시장으로 향했다. 얼마 있으면 구정이라 재래시장에 가면 혹시나 이른 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역시나 너무 이르다. 여러 재래시장 중 가경터미널 시장을 찾은 건 언젠가 시장 한 쪽에 있는 작은버스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한다는 기사를 읽은 후 호기심에서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겨울이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경수산 고동관(46). 송미영(44) 부부. 포 뜨는 거 내가 최고여~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상가는 생선가게로 고동관(46). 송미영(44) 부부가 운영하는 가경수산이다. 수산물 한지는 20년 됐고 공주 등 다른 곳에서 하다 8년 전 이곳에 왔다. 명절 앞이라 요즘 잘 나가는 것은 포와 조기. 생선은 여름이 비수기로 그때는 현상유지만 해도 본전인데 작년 여름엔 방사능 문제까지 겹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최근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많이 위축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하면 나은 편이란다. 다른 재래시장에 다녀본 손님들이 “그래도 이 시장은 살아있다”고 말한다고. “피곤한 손님이 오면 힘들 때도 있지만 멀리 이사 간 손님이 우리 물건의 품질을 알고 다시 찾아올 때 보람을 느낀다. 심지어 외국 나갈 때도 사러 온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송미영씨는 올 설은 조금 나을 것 같다며 안도의 웃음을 짓는다.

1 내가 전문가여~ 현숙이네 반찬가게의 이현숙(53). 오상진(55) 부부.

“재래시장에도 전문성이 필요해요.”

바로 옆에 반찬가게가 눈을 유혹한다. 먹을 수 있는 건 많은데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는 기자는 벌써부터 한보따리 살 요량이다. 이현숙(53). 오상진(55) 부부는 3년 된 새내기 상인이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며 부인을 돕고 부인은 병원 영양사 출신이다. 명절 전이라 제사상에 필요한 동그랑땡이나 동태전 등 어전과 육전 위주로 준비하고 있다. 가게에 ‘영양사면허증’이 붙어 있다. “자격증도 있으세요?”“재래시장에도 전문성이 필요해요.~” 옳거니. “좋은 재료를 쓸려고 신경 써요. 되도록 국산 고춧가루 쓰고 주변에 아는 사람 농사지은 것 조달할려고 해요. 시골에서 어르신들이 청국장 띄운 것 갖다 쓰고 콩으로 메주 쒀서 간장, 된장 담궈요. 식구가 먹는다는 생각으로 해야죠. ” 옛날엔 반찬가게가 반찬을 많이 떼어와 팔았는데 요즘엔 즉석에서 많이 조리해 파는 걸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은 반찬 종류가 70~80여가지나 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배가 고프니 이것저것 먹을 것만 잔뜩 산다. 저녁 반찬으로 머릿고기 눌린거와 푸짐한 족발을 샀으니 이제 야채다. 하봉식품. 7남매의 막내가 20여년 전 빈 상가가 많을 때 이곳에 들어와 터전을 잡고 지금은 사돈들끼리 서로 와서 도와주는 가족 사업이 된 곳이다. “사장님이세요?” “아니요~. 사장은 우리 막내 여동생, 나는 언니여~. 여기는 우리 사돈. 그렁께 제부의 동생, 나는 처형.” 에구 복잡하다. 하여튼 사돈이란다. 20년 터줏대감으로 시장에서 이 가게가 가장 일찍 문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는 곳이란다. 새벽 5시30분부터 저녁 11시까지. 6시 전 청소하러 온 사람들한테는 커피 서비스도 항상 하는 친절하고 부지런한 가게라고 한다. 물건도 좋고 오래된 곳이니만큼 병원, 호텔, 식당, 포장마차 등 굵직한 정기단골도 많단다.


시장의 꽃 분식집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밝고 환한 조명 아래 가게 안에서 한 분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미혼수 김효린 사장. 혼수용 이불은 물론 1000원짜리 보자기와 실, 앞치마, 베개, 전기요, 담용 등 없는 거 빼고 다 있단다. 사장은 중학교 졸업 후 어려서부터 옷감을 접해왔다. 옷을 만들고 싶어 대전에 있는 양재학원을 다니며 기술을 배워 양장점을 했고 80년대 기성복이 대중화 되자 한복으로 품목을 바꿨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한복대여가 성업하자 정작 한복 짓는 사람들은 수익이 생기지 않고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아졌다. “우리나라 고유 옷인데 배우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수익이 생기지 않으니 그 어렵고 돈벌이 안되는 것을 누가 배우려고 하겠는가. 안타깝고 속상하다. 난 한복을 보고 입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좋다. 한복, 전혀 불편하지 않다.”그녀가 만든 고운 빛깔의 한복이 입구에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시장에 매니저가 있어요.”

가경 터미널시장은 의외로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다. 이것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무던히 애쓴 사람들의 노고와 이제는 안정화 된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상인들의 서류업무와 행정업무를 도맡아서 상가와 고객의 매개 역할을 담당하는 이재양 가경 터미널시장 매니저가 있다. 그가 이 일을 맡은 지는 4년.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요일도 출근하고 어떨 땐 한 달 내내 출근할 때도 있었다. 2007년 9월 시작된 공동쿠폰제는 2010년 3월 문화체육부의 ‘문전성시’ 시범사업 시장에 선정되어 공동문화쿠폰으로 재탄생되었다. 가경예술인이 개설하는 모든 문화강좌와 수강료로 쿠폰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고객과 매출증대는 물론 문화가 있는 시장으로 만들었다.

“1년에 80만장의 쿠폰이 유통되고 투자금액이 1억이다. 고객들은 이익이 눈에 보여야 시장에 오므로 상인들은 고객 서비스에 투자해야 한다. 쿠폰은 시장 내 70여 개 점포에서 활용하고 있는데 월 1회 경품추첨도 한다. 현금 5000원 매상마다 100원짜리 쿠폰을 주는데 30개를 모으면 3000원짜리, 60개를 모으면 6000원짜리 공동상품권으로 교환하여 시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고 동아리 수강료와 주차요금으로 대신 낼 수 있다. 이 시스템이 이제 자리를 잡아 월 평균 200명의 신규 고객이 생긴다. 자료 관리를 하는데 주요 고객이 8500여 명이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할 일이 많다. 힘든 일도 많지만 일 끝나고 나갈 때 욕 먹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일 하고 있다. 내 사무실, 내 시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한다.”    
 

 작은 버스를 개조해 만든 겉절이 방송국. 겨울에는 추워 운영되지 않고 날이 풀리는 3월에나 시작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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