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 딸래미를 억지로 재우고 기어이 아내와 심야로 ‘변호인’을 보고 왔다. 법정영화이고 또 익히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어 과연 얼마나 그러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 부산. 돈도 빽도 없는 상고출신의 변호사가 다른 변호사가 거들떠도 보지 않던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던 간에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다가, 우연히 과거에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을 알아보다가 고문이 자행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주위의 만류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호인’이 되겠다고 하여 그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뜨겁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제목이 ‘변호사’가 아니고 ‘변호인’일까? 먼저 용어정리부터 해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그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을 ‘대리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민사소송에서 변호사는 ‘소송대리인’이다. 그런데 형사소송에서는 특별히 ‘변호인’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경찰, 검사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정의에 대한 마지막 보루인 할 판사도, 나아가 그들을 감시해야 할 언론까지도 모두 개인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절대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거나 그것을 알고서도 모른 체 한다. 그들에게 이 땅의 정의는 그저 교과서에만 존재할 뿐, 오로지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에만 급급할 뿐이다. 그러나 송변호사는 외로이 독재 권력의 횡포에 저항한다. 그가 변호한 사람은 형식적으로 부림사건 피고인인 국밥집 아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일 것이다. “국가가 국민입니다”라는 그의 최종변론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런 면에서 단순하게 직업을 지칭하는 ‘변호사’라는 말로는 왠지 부족해서 ‘변호인’이라고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참고로 대개 소송법적으로 변호사가 곧 변호인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대개 변호인은 변호사 중에서 선임하여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인이 될 수 있다. 바로 사법연수생이다. 사법연수생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기까지는 아직 변호사가 아니지만, 2년차 때 법원 시보를 하면서 국선변호인을 맡는다.

민사소송에서는 어떨까?  민사에서는 소송대리인이 대부분 변호사이지만 변호사가 아닌 경우도 있다. 먼저 법령의 규정에 따라 당사자의 일정한 범위 안의 업무에 관하여 일체의 재판상의 행위를 할 권한을 부여받은 ‘법령상의 소송대리인’이 있다. 이에는 상법에 따른 지배인·선박관리인·선장 등이 있고, 국가가 당사자인 경우에는 법무부 장관과 각급 검찰청의 장 또는 행정관청의 장이 지정하는 직원이 대리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단독판사가 심리·재판하는 사건 가운데 그 소송목적의 값이 1억원 이하인 사건에서, 당사자와 밀접한 생활관계를 맺고 있고 일정한 범위안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당사자와 고용계약 등으로 그 사건에 관한 통상사무를 처리·보조하여 오는 등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대리인이 될 수 있다. 다만 2천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에서는 당사자의 배우자·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는 법원의 허가 없이도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

참고로 영화에서 옥의 티가 하나 있다. 재판 장면에서 판사가 법정에 끌려나온 국밥집 아들을 ‘피고’라고 호칭하는 것이 나오는데, ‘피고’는 민사재판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고,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이라고 부른다.

생각을 나아가서 영화의 모티브인 ‘변호사’ 노무현을 생각해본다. 정치인 노무현은 그 평이 극렬하게 갈리지만, 적어도 변호사로서의 노무현은 ‘변호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변호사 노무현은 영화에서처럼 실제에서도 부동산 등기나 세금소송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의외의 계기로 인해 돈이 전혀 안되는 부림사건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찰 및 검찰의 보이지 않는 협박, 나아가 세무조사까지 받으면서까지 변호인 사임을 강요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변호인을 사임하지 않았고 끝까지 독재권력에 싸워 진실을 밝혀낸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인 그의 신념, 그리고 그의 ‘용기’가 버텨낸 힘이다.

영화에 독재권력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던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한다. 영화와 지금의 시대상이 오버랩 되는 요즘이다. 만약 변호사 노무현이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고 그립다. 


최우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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