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힘찬 삶을 가꾸는 손화일 선생

I

 
MF는 내게 큰 시련이었다.
25년간 몸담아 온 한일 시멘트에서 명퇴한 후 서원대학교에서 일하다 지난 4월에 퇴직, 평생 짊어지고 왔던 가장의 몫을 내려놓고 요즘 글 쓰는 재미로 산다. 이력을 본다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IMF로 정리 해고된 후 다시 일터를 잡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퇴직 후 동맥경화로 쓰러져 다시 걷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하루 3갑을 피울 정도로 담배를 즐겼고, 술도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하반신 혈관이 막히면서 “동맥경화”로 2004년 6월 15일 제천에서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충북대 병원으로 오면서 청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무릎 아래 꽉 막힌 두 다리의 동맥혈관을 절단하고 양쪽 허벅지 동맥을 잘라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고 한 달간 입원해 있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교체되었다. 이대로 '내 인생 끝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퇴원 후 집안에 앉아 있으면 다시는 못 걸을 것 같아 마치 걸음마 배우는 아이처럼 한 발 한 발 디디며 낯선 청주시내 이 거리 저 거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다녔다. 그 동안 재활치료 겸 운동 삼아 다닌 것이 거의 청주 시내 지리를 파악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2007년 청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1인 1책 펴내기 운동‘ 이란 현수막을 보고 곧바로 ’글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한일시멘트 재직할 때 한일 사보에 많은 글을 투고한 경험이 있던 나에게 글쓰기란 문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성적인 나에게 글쓰기란 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좋은 취미이자, 희망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의욕이 앞선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청주시에서 무료로 교육을 하고 책을 만들어 준다니 고맙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만난 강사님이 두꺼비 생태문화관에서 강의하시는 전영순 작가선생님이다. 나와는 벌써 7년째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전영순 강사님은 시와 수필은 물론 평론까지 등단하시고 일본에서 오랜 생활로 일본어에도 능통하신 분으로 절망의 시간을 걷고 있을 때 삶을 희망으로 바꿔준 분이시다.
밤이고 낮이고 일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 툭툭 튀어 나오는 시상,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산문집 『희방사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와 시집 『남한강 아리랑』?『등신』, 동시집 『빨간 접시 노랑 접시』를 출간했다.
2013년 8월 ‘충청 타임즈‘에 100세 시대 인생 2막을 사는 사람에 소개되었고, 산남동 마을신문에 동시 연재와 2013년에 네 번째 시집 『등신』이 일인 일책 출판 기념식 날 장려상으로 선정되었다.
학창시절 개근상 한 번도 못 타본 내가 나이 67세에 받은 장려상은 정말 큰 상이었다. 또 KBS 제1 라디오 ‘생생 충북’에 일인 일책 출간 최고령자로 소개되었다.
내 꿈은 은퇴 후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글을 써서 소중한 내 책을 갖는 것이었다. 쓰러지고 난 뒤 시골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은 글도 쓰고 내 책도 벌써 네 권이나 출판되어 요즘은 정말 즐겁고 살 만난다.
 

내년에 동시집 『방울 비』를 낼 기쁨으로 하루하루가 즐겁다. 글쓰기로 부부금실도 좋아졌다. 항상 얼굴에 그늘이 지고 우울해 있던 내 얼굴이 밝아졌고 웃음이 많아졌다. 또, 나는 매니저를 둘 필요가 없다. 아내가 우리 영감 글쟁이라고 어찌나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는지 인사받기에 바쁘다.
제천 친구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라 하지만 정이 들어버린 청주에서는 돌아가지 말라고 신문에 나오지, 상장 받았지, 라디오 방송에 나오지, 이 나이에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을까 생각한다. 청주로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장거리 도보여행은 무리지만 욕심을 내 속리산 문장대와 계룡산을 다녀온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인생, 마음을 비우고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안히 살자고 아내가 애교를 떤다.
내가 몸이 아프고 마음이 상실되었을 때 내 건강을 위해 운동해라, 약 먹어라, 글쓰기 모 임에 가져갈 글은 써 놓았는가, 용돈은 있는지 일일이 다 신경 써준 아내가 새삼 고맙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 살갑게 “사랑해, 미안해, 뽀뽀뽀”는 못할지언정 오늘은 진심으로 “여보! 사랑합니다.” 란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칠순기념으로 시집도 내고 건강이 허락하면 동화 ‘단군신화‘를 주제로 애니메이션이 제작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우리 나이에 취미 생활한다는 것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 금전적, 육체적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고 망설여진다. 글쓰기는 이런 부담을 전혀 받지 않는다. 볼펜 한 자루와 메모지 한 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줄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다. 준비 없이 맞이한 노후 내 능력에 맞는 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건강을 잃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일인 일책 모임에 참석하여 남은 인생 2막을 글쓰기에 전념할 것이다.

요즘 유행가 가사처럼 “내 나이가 어때서 글쓰기 딱 좋은 나이인데” 오늘도 힘차게 “산남동 두꺼비 생태문화관” 일인 일책 모임을 향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은퇴, 끝이 아닌 시작이다!”
 

글 : 손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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