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화백의 ‘만화와 나의 삶’ (11월 풀꿈환경강좌)

 
 
‘풀꿈환경강좌’는 여러 시민단체가 청주시의 지원을 받아 4년째 진행하고 있는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인문학 강좌다.
지난 11월 20일, 올해 마지막 풀꿈환경강좌는 박재동 화백의 ‘만화와 나의 삶’이라는 주제 로 열렸다. 아랫목에 배 쭉 깔고 누워 만화책 보는 걸 최고의 낙으로 여기는 내 구미에 딱 맞는 강의였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큰아들에게도 전화해서 같이 가자고 꾀었지만 오지 않아 아쉬웠다. 퇴근 후 상당도서관으로 가니 8년간 한겨레 그림판을 담당하며 한 장의 그림으로 시대를 담은 시사만화가의 명성을 말해주듯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당당한 체구에 긴 잿빛 머리칼을 가진 박재동 화백은 예술가다운 모습뿐 아니라, 빼어난 말솜씨로 강의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 강좌를 진행하는 청주충북환경연합 김경중 처장의 정중하고도 정성스러운 강의요청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왔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박재동 화백이 어릴 때 그의 부모님은 만화방을 했다. 한쪽에선 풀빵과 꽈배기, 팥빙수를 팔았다. 만화방 주인 아들인 그는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새로 나온 만화책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손으로 돌리는 팥빙수 기계로 어름을 적당히 갈아 삶아놓은 팥을 듬뿍 퍼 넣고 조청을 얹어 팥빙수를 만든 후, 꽈배기도 함께 가져가 찜 해 놓은 신간 만화책을 펴든다. 책 한 장 읽고 팥빙수 한 숟가락 먹고, 다시 한 장 읽고 꽈배기 한 입 먹고. 그 황홀한 기분~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 어찌나 실감나게 말하는지 내 입에도 침이 고이고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불량만화 읽지 말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내 자식 망친다며 만화방으로 찾아와 악담을 퍼붓는 어른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에게 “아빠, 만화방 그만 하면 안 돼?” 묻기도 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그때 부모님 심정이 어땠을 지 가슴이 아프다고. 그렇게 천대 받던 만화가 지금은 교과서에도 실렸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또, 화면으로 보여주는 여러 만화를 통해 만화의 변천사를 알 수 있었다. 처음엔 글이 많았으나 점차 줄었으며, 나중엔 말풍선이 생겨 그림과 풍선 속 대사만으로도 내용 전개가 되었다. 그림 칸도 답답했는데 점점 공간분할이 자유로워지고 넓어져서 보기가 좋아졌다. 라이파이 동호회 회장이기도 한 박재동 화백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김산호 작가의 ‘녹의여왕과 라이파이’는 내용까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태백산맥 깊은 산속 동굴에 비밀기지를 두고 약혼녀가 모는 멋진 비행선 제비기를 타고 다니는 라이파이와, 인카의 후예로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악녀지만 미워할 수 없는 녹의여왕과의 숙명의 대결. 유치할 것 같은 그 얘기도 그의 입을 통해 들으니 매우 재미있었다.


‘만화가’는 참 좋은 직업이라는 박재동 화백. 보이는 모든 풍경을 다 좋아한다.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슥슥 그리면 그림이 되고 기록이 된다. 또, 그게 돈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못 하는 게 아니라 더 능숙해진다. 뭐를 하던 자기 일을 즐기며 하길 바란다고. 요즘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학습만화가 많이 나오는데, 그런 만화보다는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만화가 많이 생기면 좋겠단다. 아이들이 그런 만화를 읽어야 감성이 풍부해지고 나중에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강의가 끝난 후 그는 사인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쓱싹쓱싹 캐리커처로 사인을 해줬다.
어린 시절 나도 만화가를 꿈 꿨는데… 유명한 만화가를 직접 보니 신기하고 즐거웠다.

▲ [ 1995. 5. 27 한겨레 그림판]- 전국지하철노동자협의회와 한국통신 노조의 노동운동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대응을 담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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