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입학하는 이규호씨

▲ 지난 2월23일 퀸덤 도서관에서 후배들과 ‘형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현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라고 당부했다.
▲ 이규호 씨 (20. 산남퀸덤) 그에게 대학 합격이란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는 청춘의 특권을 또 한 번 부여받은 것이다.

공부하는 청춘은 행복하다

올해 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입학하는 이규호씨

 

그를 인터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수능시험과 관련한 여러 기사와 사진이 마을신문에 올라왔고, 그중 한 편의 글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수능 날 아침 아들을 시험장에 배웅하는 엄마의 글이었다.

 

...(중략) 고3아이는 “엄마 아빠 자리에 앉으세요.” 하더니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준비한 것 다 쏟아 붓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큰 절을 올린다. 고3부모는 그 아이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고 아려오며 안쓰러워 눈물을 감추며 “지금까지 잘 해왔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쏟아 붓고 와라.”하며 아이를 안아주며 격려한다...(중략)

 

글 속의 ‘고3아이’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시험을 치르러 가며 부모님께 큰절을 올린 마음 결이 예사롭지 않은 이 아들은 시험도 잘 치를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이 절로 들었다. 내 멋대로 수첩에 인터뷰예약까지 잡아 두었다. 이윽고 나의 확신을 입증하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고3아이’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단다. 오호~망설일 것도 없이 전화를 걸어 진짜(?) 약속을 잡았다. 2월 20일 두꺼비생태문화관 차실에서 이규호 씨를 만났다.

 

시험 날 아침 부모님께 큰절 올리며 마음 단단해져
최고의 교육환경 돼주신 부모님께 감사
축하인사를 건네기가 바쁘게 ‘큰 절’의 의미부터 물었다. “인터넷에서 본걸 저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저를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께 진심을 담아 절을 올렸는데. 초조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힘이 생기더라고요.” 흔히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는 죄인이라고 한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 부모의 심경을 다 헤아리기엔 아직 이른 나이일터... 진심을 담아 감사의 절을 드렸다니 부모 된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이 차오른다.

말나온 김에 부모님에 대해 더 듣자했더니 ‘스스로 본을 보이신 지혜로운 분들’이라고 한줄로 정리를 한다. “교육에 있어 누구나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환경은 부모가 아닐까요, 저 역시 부모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니까요.” 10여 년 전 부터 이 씨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할 일없이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며 온 가족이 동의한 끝에 과감히 내다 버린 것.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실 때 마다 저희들에게 미칠 영향을 먼저 고민하셨죠. 제가 다섯 살 때부터 가족모두가 ‘다언어 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고 영어를 비롯한 세계 7개 국어를 접할 수 있었어요. 외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제게 스스로 공부하는 모델입니다.” 규호 군이 학습지를 할 때는 아버지가 직접 채점을 챙기며 아들의 ‘상태’를 살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며 이런 저런 짐만 지우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요. 짐만 주지 말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의 특성을 살피는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역시 큰 절 받을 만한 부모님이시다.

 

두리 뭉실한 꿈이라도 좋아, 꿈이 있어야
자극받을 수 있는 친구들 소중해
언제부터 공부를 잘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1등을 도맡아 했겠다 묻자 난감한 표정이다. “중학교 졸업 때 까지 너무 평범한 아이였어요, 성적도 그리 빼어나지 않았고요.” 전교10등이 최고성적이었고 게임을 즐겼다고 자백(?)한다. “중학교3학년 때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과학고 등 특목고를 준비하는 것을 보며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선행학습도 전혀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고등학교가면 더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밀려왔다. “중3 겨울 방학 때 혼자 미친 듯 공부했어요. 혼자서라도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나 하면서요.” 좋아하던 게임도 끊고 공부에 매달린 결과 고교입학 4등이라는 성적을 얻었다. “4등! 깜짝 놀랐어요. 나도 공부하면 되는구나, 너무 기분 좋더라고요.”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고1때 친구를 통해 우연히 ‘국제기구’에 관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막연하게 국제기구에서 세계 식량문제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어렴풋하나마 꿈을 갖게 되니 ‘서울대학교 식물생산학부’라는 구체적 목표까지 세워졌다. 전교 1.2등을 다투며 무섭게 공부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에서 피나고 엉덩이에 종기 나도록 공부 또 공부
대학은 장밋빛 인생 아닌 꿈을 향한 하나의 과정일 뿐
“고3때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가 오른 손을 펴 보이며 가운데 손가락의 딱딱하게 굳은 살들을 보여준다. “펜에 짓눌려 상처가 나고 피가 났어요. 피가...” 말끝을 잇지 못하며 목소리가 떨린다. 기억조차 여전히 고통스러운 가 보다. 손가락에서 피가 나도록 공부한다는 어떤 것일까,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공부한다는 것은...? 가슴이 서늘해 진다.

분위기 좀 돌려볼까 싶어, 대학가면 제일 먼저 무얼 해보고 싶은지 지 물었다. 미팅? 동아리? 뻔한 답을 기대했건만 “이제부터 더 열심히 공부해야죠. 더 열심히!” 아,,, 손가락에 피 마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공부를? “대학합격은 어디까지나 제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죠. 장밋빛 인생이요? 꿈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청춘을 공부에 바치는 것이 억울하다고요? 왜요? 과정을 즐기면서 순간순간 나의 가치를 느끼는 것...행복하지 않나요?” 앞으로 해야 할 영어며 공부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반짝, 목소리에 생기가 더 한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는 어린 친구에게서 인생 선배의 포스가 느껴진다. 고교시절의 치열한 공부는 그에게 인생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게 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진지하게 더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할 각오가 돼있다. 자신의 꿈을 이룰 충분한 자격이 있다. 나의 확신은 세월을 두고 확인해 볼 일이다.

양은경 기자 quf1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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