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첫 뮤지컬 ‘영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새해부터 애국심을 다지게 하는 감동적이고 경건한 하지만 화려한 뮤지컬’ 이라 하겠다.

 

이 뮤지컬을 보게 된 것은 매우 간단한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독립투사들과 안중근의 힘겨웠던 삶을 돌아보고 교훈을 얻어 보자’, 뭐 이런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단지 공연을 보러 다녔던 공연장 중 안 가 본, 서울예술의전당 공연장을 한 번 방문해 보자는 생각에서, 우리나라에서 만든 창작 뮤지컬치고는 매우 괜찮다는 블로거들의 얘기 때문에 ‘공연 예매하기’를 클릭한 것이다.

솔직히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닥터 지바고’라는 다른 뮤지컬을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매우 유명하고 잘 알려진 외국의 라이선스 뮤지컬들만 봐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독립투사 얘기가 뭐가 그렇게 재미있겠어.’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주 조금은.

그래도 막상 공연장에 오면 설레고 떨리는 게 당연하다.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닌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극장 매표소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한 티켓을 받을 때, 프로그램 북을 살 때, 오늘의 캐스팅을 볼 때, 기대로 가득 찬 사람들을 둘러볼 때, 공연 시작 전 공연장 불이 서서히 꺼질 때는 항상 설레고 긴장된다.

극장에 꽤 여유 있게 도착해서 여기 저기 둘러보고 사진도 찍은 뒤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좌석은 3층 오른쪽 편 맨 앞줄. 무대가 잘 보여서 시력이 좋은 사람은 배우들의 얼굴까지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이 서서히 꺼지는 긴장되는 순간. 웅장한 소리와 함께 서곡이 연주된다.

뮤지컬은 안중근이 다른 독립투사들과 함께 단지동맹(정천동맹)을 맺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뮤지컬의 주요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안중근과 독립투사들이 독립 운동을 하던 중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사형 선고를 받고 죽는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내용이지만 중간 중간, 안중근의 친구 왕웨이의 여동생 링링의 짝사랑 이야기, 독립투사들에게 정보를 주는 게이샤로 정체를 감춘 은밀한 스파이 설희의 이야기, 또한 이토의 꿈과 야망 등의 이야기들이 등장해 그들의 이야기도 감동을 선사한다.

극의 전개가 깊어질수록 점점 뮤지컬에 빠져들었고 1부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도저히 뮤지컬 넘버 CD를 사지 않을 수 없어 쉬는 시간에 서둘러 사고, 2부가 끝났을 때는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을 선사받아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2부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장면과 화려한 기차 장면, 안중근의 재판 장면, 사형 장면 등이 나왔는데 마지막 안중근이 사형대로 가기 전에 그의 어머니 조 마리아가 아들을 생각하며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에서는 감동이 눈물로 되어 흘러내렸다. 정말 엉엉 울고 싶었지만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옆 자리의 사람을 포함해 공연장 곳곳에서는 훌쩍훌쩍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 재판을 받을 때 반론 기회를 주는 재판장의 말이 끝나자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15가지의 목록을 노래로 부르는 ‘누가 죄인인가’는 가슴을 뜨겁게 했고 사형대에 올라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려 노래를 부르는 안중근의 ‘장부가’는 간신히 멈춘 눈물을 다시 터트리게 했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이라는 가사가 가슴을 울려 다시 먹먹해지면서 노래의 웅장함에 소름이 돋았다.

이 뮤지컬 '영웅'을 보기 전까지는 안중근이라고 하면 나라를 위해 가족을 버린 독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 뮤지컬을 통해 그도 가족을 그리워하고 포기하고 싶지만 그 유혹과 흔들리는 마음을 외면하고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운 훌륭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토록 조국에 돌아오고 싶어 했던 그였는데, 일본이 그의 시신을 유린해 행방을 알 수 없어 독립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가슴 아팠다. 안중근의 시신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요청하여 꼭 찾아야 할 것 같다.

내용만 훌륭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군들과 일본 경찰들이 벌이는 군무들도 화려했고 게이샤들의 하이 톤의 노래와 어울리는 기교 있는 춤도 볼거리이다. 또, 이토와 설희가 하얼빈 역으로 가는 기차 장면은 정말 굉장했다. 무대 장치는 소품과 스크린 영상이 함께 이루는데 영상 효과를 넣어서 그런지 영화 같으면서도 더 생생한 효과를 주는 것 같았다.

가끔씩 대사 없이 리액션만 있는 부분의 어색함과 자주 있는 암전 등을 빼면 음악, 배우들의 노래, 스토리, 무대 장치 등 여러모로 훌륭했던 작품이라고 느꼈다. 앞으로도 한국의 역사를 담은 이런 훌륭한 뮤지컬들과 우리나라가 제작한 웰-메이드(well made) 뮤지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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