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의 시작과 멸망에는 법칙이 있다

우는 홍수라는 대재난에서 인류를 구해 낸 영웅으로 순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하나라를 세운 임금이다. 우는 엄청난 홍수를 다스리느라 자신을 곰으로까지 변신시켜 산을 깍아 냈고 가정까지 희생하였기에 지혜와 인내 그리고 헌신적인 인물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우임금 이후에는 자손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는 세습 왕조를 이루기 때문에 더 이상 선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임금이 10년을 나라를 다스리다 죽은 후 수백 년 동안 하나라는 성군 우의 후예답게 안정과 평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폭군 걸이 출현하며 사정은 달라졌다. 걸은 엄청난 거구에다 힘도 세고 용감한 기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질을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쓴 것이 문제였다. 걸은 요대라는 화려한 궁전을 짓고, 주지를 만들어 퇴폐와 향락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는 값비싼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왕비 말희를 위해 나라에서 긁어모은 비단을 쌓아놓고 비단을 죽죽 찢으면 말희는 좋아라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임금이라는 자가 이렇듯 한심한 짓만 골라 하자 백성들은 인자한 정치로 민심을 얻고 있던 하나라의 제후국인 은나라로 몰려들었다. 은나라의 제후는 탕이었다. 탕의 인자함을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탕이 들에 나갔다가 한 사내가 그물을 치고 “하늘에서 내려오든 땅에서 솟아나든 사방에서 오는 것들은 모두 다 내 그물에 걸려라”하고 기원하니 탕은 사내를 타일러 그물의 두 면을 풀어주고 “왼쪽으로 도망칠 짐승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도망칠 짐승은 오른쪽으로, 도망치고 싶지 않거든 그물 속으로 들어오렷다”고 한다. 이에 짐승에게도 관대한 탕에게 감동한 많은 제후들이 그를 따랐고 탕은 천명으로 폭군 걸을 무찌르고 새로운 나라 은왕조를 열었다.

이후 성군 탕이 세운 은왕조는 몇 번의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훌륭한 군주가 나타나 위기를 잘 넘겼다. 그러나 마지막 주왕에 이르러 결국은 몰락하고 만다. 주왕은 문무를 겸비했고 총명했으며 말재간과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재능만 믿고 교만했으며 안하무인이었다. 주왕은 7년에 걸쳐 녹대라는 화려한 궁궐을 짓고 종일 술에 취해 지내며 미녀들과 음란한 파티를 즐겼다. 특히 달기의 환심을 사려고 세금을 마구 걷어 진귀한 물건으로 궁전을 채웠으며,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들었고(주지육림) 불만을 토로하는 관리들에게 포락의 형벌(활활 타는 숯불 위에 구리 기둥을 뉘어놓고 그 위를 걷게 하는 것)을 주며 즐거워했다.

이렇듯 주가 달기와 함께 폭정으로 민심을 잃어갈 때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는 성인이 출현하였으니 그가 바로 은의 제후국이었던 주나라의 창(후일의 주문왕)이다. 주나라는 공자가 그리워한 예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나라 역시 좀처럼 웃지 않는 포사라는 여자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유왕이 봉화를 거짓으로 올려대는 바람에 나라를 망치게 된다.

역사란 반복된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왕조의 시작과 멸망에는 법칙이 있다. 물론 왕조가 처한 상황이 시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열흘 내내 피어 있는 꽃이 없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아무리 난세를 구원하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 새 왕조를 열었어도 난폭한 임금에 이르러서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야 만다. 걸왕과 주왕은 나라를 망친 폭군으로, 걸왕을 쫓아낸 탕왕과 주왕을 쫓아낸 주문왕은 성군으로 숭배된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승자의 입장에서 전해주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굶주리고 중소 농민들은 몰락하는데 국가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결국 나라를 망쳤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김해숙 (청주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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