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중국의 사마천이 기원전 100년쯤에 쓴 역사책이다. 2100년이나 지난 중국의 고대 역사책이지만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 뿐 아니라 뛰어난 문장력으로 걸출한 문학작품 같기도 하다. 조선 후기의 문인 연암 박지원도 이 책의 애독자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最古의 역사책인 삼국사기도 사기를 참고해서 쓴 책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사기를 읽어 왔을까? 사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마천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중국의 시조 황제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 3000년에 가까운 방대한 역사를 한 개인이 쓸 수 있었을까?

사마천의 조상들은 대대로 사관(史官)이었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사관의 지위와 영광이 과거와 달리 단지 기술직으로 전락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공자의 <춘추>같은 책을 쓰고 싶어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들인 사마천에게 유언을 남겨 과업을 이루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사마천은 태사령이란 자리에서 왕실 도서관의 공식 문서들과 아버지의 유품 그리고 답사와 왜곡되지 않은 사관으로서의 눈으로 역사책을 쓰고자 했다.

그런데 사마천의 운명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한나라의 이릉 장군이 흉노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한무제는 이 사실에 분노하였고, 신하들도 모두 이릉을 매도했다. 오직 사마천만이 홀로 이릉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변호하였고, 결국 사마천은 궁형(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을 받았다. 사대부에게 궁형이란 사형보다도 더 굴욕적인 처벌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죽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역사서를 써야하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자신의 기막힌 운명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기열전의 첫편(백이열전)에서 묻는다.

“어떤 사람은‘하늘은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고 말하지만 명분이 통하지 않는 혼탁한 세상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이 굶어 죽은 것을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과연 하늘의 뜻은 옳은가? 그른가?”

이 말은 사마천의 역사관이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천하에 이름을 날린 사람들 외에도 신념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의 행동을 깊이 관찰했다. 개인의 상황과 역사적 상황을 교차하여 사건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이 그린 역사 인물이 누렸던 부귀영화와 명예를 넘어서 어떤 정신과 뜻으로 살아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사기에서는 요·순 같은 임금에서부터 백이숙제, 강태공, 관중과 포숙, 오자서, 소진, 장의, 맹상군, 진시황, 유방과 항우 등등 수많은 영웅호걸과 왕후장상 그리고 사업가, 코미디언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삶 속에서 인간 사회의 우정과 배반, 이익과 손해, 정신과 물질, 지혜와 우둔함, 탐욕과 베풂 그리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史記의 매력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마천은 당대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史記를 쓴 것이 아니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쓴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 삶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책,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며 우리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마음이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이영순(청주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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