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의 교육 이야기 46

 

‘곽탁타’가 나무 기르듯

 

‘고문진보’의 <종수(種樹)‘곽탁타’전>은 당나라 문인 유종원이 지은 정원사 곽탁타 이야기다. 곽탁타는 곱사병을 앓아 등이 굽은 장애자로, 그 모습이 낙타 같다 하여 ‘탁타(낙타와 같은 말)’라 불렸으나 자신도 그 별명이 그럴듯하다면서 언짢아하지 않았다.

탁타의 생업은 나무를 심고 기르는 일이었는데, 그가 심는 나무는 한 그루도 죽는 법이 없었다. 어떤 나무든 잎은 무성하고 열매는 충실했으며, 남들은 엿보거나 흉내를 내려 해도 제대로 따라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가 그 비법을 물으니 “제게도 뾰족한 수는 없지요. 그저 나무의 본성에 이르게 할 뿐인 걸요.”하고 말했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뻗으려 하고 덮는 흙은 평탄해지려 하지요. 흙은 또, 자라던 땅의 것이 좋고 꼭꼭 밟아 뿌리에 붙여주는 걸 좋아합니다. 심고 나서는 건드리지도 말고 걱정도 말며, 돌아서서는 다시 돌보지 말아야 합니다. 나무를 심기는 품안의 자식 같이 하고, 두기는 버린 자식처럼 해야 그 본성이 온전해져서 제대로 자랍니다. 저는 다만 나무가 자라는 걸 해치지 않을 뿐 키우거나 무성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열매도 부실해지지 않게 할 뿐 일찍 열리거나 많이 열리게 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더군요. 뿌리는 구부러지게 하고 흙도 다른 것으로 바꾸며 북주는 것도 지나치거나 혹은 모자라게 합니다. 나무의 본성을 거스르는 이들은 사랑도 너무 넘치게 하고 걱정에도 지나친 부지런을 떨기 일쑤지요. 아침에 들여다보고 저녁에 매만지며 갔다가도 되돌아와 다시 건드립니다. 심지어는 껍질을 까 살았는지 말라죽었는지를 보고, 줄기를 뒤흔들어 제대로 탄탄히 심겼는지를 보고야 맙니다. 그러니 나무의 본성은 나날이 여읠 수밖에요.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괴롭힘이요, 걱정이 아니라 원수를 맺음입니다.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달리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하매, 듣는 이가 다시 묻기를 “그대의 도를 관청 일에 옮겨보면 괜찮겠소.”하니 탁타가 다시 “저는 나무 심는 일이나 알 뿐, 다스리는 일은 본업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관청 나리님들이 잡다한 지시를 즐기는 걸 보면, 백성을 꽤 사랑하는 듯이 하면서 종내 화를 부르고 말더이다. 조석으로 들볶기를 “밭을 갈아라, 뭣을 심어라, 뭣을 거두어라… 누에 쳐서 실을 뽑아라, 옷감을 짜라… 자식을 낳아라, 소 돼지와 닭을 길러라… 북을 울려 백성을 부르고 딱따기를 두드려 다그치지요.

우리 같은 소인배는 조석으로 음식을 바쳐 관리들 환심 사기에 급급합니다. 이러고서야 무슨 수로 백성들의 삶을 번성케 하고 본성을 편케 하겠습니까?”

이에 묻는 이가 기뻐하며 이르기를 “훌륭하오. 그대에게 나무 기르는 것을 물었다가 사람 돌보는 법까지 배웠구료. 이를 전해 관의 경계로 삼도록 하리다.”고 하였다.

이 곽타타 이야기는 아이들을 기르는 교사나 부모들에게까지 일깨움을 준다. 나무든 아이들이든, 그들의 생명을 가꾸고 보듬는 일이 크게 다르겠는가.

김 병 우 <‘행복한교육발전소(준)’대표, 계룡 리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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