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재판에서의 ‘신속’의 원칙에 대하여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또는 변호사는 욹궈 조진다)”

 

법조계에 있는 ‘육조지기’라는 말이다. 장을병의 『육조지』와 이문열의『어둠의 그늘』라는 소설과 영화화 된 허영만의 『비트』만화에도 나온 말이다.

옛말에 “송사 2번 하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도 있는데, 과거 형사나 민사소송에 휘말려 봤던 사람이라면 육조지기나 위 옛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것이다.(과거라고 표현한 이유는 현재도 그렇다고 하면 필자를 포함한 많은 관련자들이 억울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 “미뤄 조진다”는 것은, 수사나 재판을 질질 끌어 수개월 심지어 수년씩 걸려 당사자들이 정신적, 육체적, 재산적 고통을 이중 삼중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빨리 빨리’ 문화는 중국집 배달일, 신호대기중인 교차로, 외국인 고용 공장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빨리 빨리 문화는 법규에도 존재한다. 그것도 단순한 부가물이 아니라 하나의 법의 기본적 이상으로 말이다.

형사소송(수사 포함)이 지향하여야 할 3대 이념은 실체진실주의(당사자의 인정여부나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에 구속되지 않고 객관적 진실 발견을 추구), 적정절차(공정한 법적절차를 지킴), 신속(수사나 재판은 신속히 진행하여 종결)의 원칙이다. 지킬 것 지키면서 진실을 발견하되 빨리빨리 하라는 것이다.

 

민사소송의 4대 이념도 적정, 공평, 신속, 경제(당사자의 소요되는 비용과 노력을 최소화)의 원칙으로, 수사나 형사, 민사 모두 신속의 원칙을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헌법 제27조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을 정도다.

의뢰인이 찾아와 고소 대리를 의뢰하거나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며 선임을 의뢰한다. 의뢰인이 지나가는 말처럼 언제쯤 끝날까요 라고 묻는다. 경찰 조사 앞으로 5-6개월, 검찰 조사 2-3개월, 그리고 상대방이 부인하면 재판에 증인도 불러야 하니 재판이 3-4개월 걸려 일찍 끝나면 내년 이맘때쯤이 되겠다고 하자, 의뢰인이 기겁을 한다. 그나마 수사나 형사재판은 짧은 편으로, 민사소송은 3-4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과거 정치적 사건, 다수 분쟁사건의 경우 의도적(?)으로 수사나 재판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경찰, 검찰, 법원이 태만하여 수사나 재판이 만연히 늦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매일 수십건씩 사건을 배당받다 보니 그들의 캐비넷마다 사건기록이 넘쳐나,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상관은 부하직원에게 빨리 빨리 사건을 처리하라고 독촉하고, 보험 모집인들처럼 매월 미제사건(해당 월에 종결하지 못한 사건)의 비교치로, 심지어 늦어진 경위서나 언제까지 처리할 것인지의 계획서를 제출하라며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언(法諺)처럼 ‘신속’의 원칙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수사나 재판의 지연으로 그 만큼 당사자들은 정신적, 신체적, 재산적 고통을 받을 것이고, 심지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늦게 배달되어 먹지 못할 정도로 불어 터진 짜장면처럼, ‘미뤄 조진’ 정의는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고, “사법(司法)은 신선할수록 향기롭다”는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말처럼, 당사자를 위하여 정의는 되도록 신속히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용현 변호사(법무법인 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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