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같은 도서관장

 

천재들의 세기인 17세기 서양사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천재는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였다. 그는 수학자․자연과학자․법학․신학․언어학자로서 뉴턴과 더불어 미적분학을 창시하고, 컴퓨터의 효시인 이진법 계산기를 만들고,『주역』을 해석하기도 하고, 도서 검색체계를 만들어 도서관학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궁정 도서관의 관장으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책을 빌려가면 화를 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도서관을 자주 찾아오거나 책을 자주 빌려 가면, 도서관이나 책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기야 현대 이전의 도서관이라는 것이, 시민의 교양이나 편의를 위한 광장이 아니라 왕과 승직자, 귀족을 위한 고전의 보존과 복원의 비밀창고 역할이 주된 것이었으니, 그 책임자인 도서관장으로서는 시민들이 찾아오거나 책을 빌려가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청주교육지원청 소속 B 공무원이 청주 샛별초 인조잔디운동장 반대운동을 벌인 충북대 의대 A 교수에 대하여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A 교수는 국가 정책 사업으로 전국에서 실시되는 다양한 학교운동장 조성사업임에도 검증되지 않은 유해성과 샛별초가 선정된 행정적 절차 등을 문제 삼아 법원, 감사원에 소송과 민원을 제기해 청주교육지원청과 샛별초의 행정력을 탕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당시 A 교수 등 인조잔디 운동장에 반대한 학부모들을 위하여 무료로 소송대행을 해주었다가 “처분이 아니다”라는 이유 등으로 패소판결을 받은 사람이 바로 필자니, 그의 말대로라면 필자도 A 교수와 더불어 행정력을 탕진한 공범인 셈이다.

샛별초 인조잔디 사건은 위 공무원의 지적대로 절차상의 민주성과 인조잔디의 유해성 여부가 주요 문제였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학교운동장 교체작업을 하면서 천연잔디, 인조잔디, 마사토 등의 선택권을 주고 주민들과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공청회 등을 거쳐 이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샛별초는 그 과정에서 인조잔디만으로 특정한 채 그것도 일부 조기축구회원들과 운영위원만의 찬성의견을 취합하여 신청을 하고, 청주교육지원청은 그대로 인조잔디 대상학교로 선정하였던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민주적이고 신중한 결정과 다양한 선택을 주문하였는데, 실무적인 선정과정에서 몇 사람의 의견으로 인조잔디만으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도서관장은 도서관과 책이 그 존재 이유대로 제대로 운용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고, 도서관과 책의 존재 이유는 시민들의 그 사용가치에 있는 것이다. 라이프니츠 도서관장처럼, 도서관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하여 시민들의 출입을 막고, 책을 깨끗이 보존하기 위하여 책의 대여를 막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국가 정책 사업이라고 하여 찬성해야 하는 이유도 없고, 행정력의 일사분란함, 효율을 위하여 시민이 희생할 이유도 없다. 국가정책 ․ 행정 ․ 공무원이 시민에 의하여, 시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시민이 국가정책을 위하여, 공무원이 행정의 효율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장이 보다 많은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도서관과 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처럼, 국가정책 ․ 행정의 담당자인 공무원은 국가정책의 효율적 추구를 앞세우기 이전에 시민들이 참여, 비판, 소통, 거부를 겸허히 수용하고 최선을 다해 이를 추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