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우 (교육칼럼니스트, 계룡 리슈빌)

우리나라에서 사교육 문제만큼 복잡한 과제도 없다. 교육문제이면서도 사회적적 과제이고, 지역문제를 넘어 국가적 과제로도 해묵어, 각종 선거마다 해법과 대책을 묻는, 후보 검증의 기준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뿌리가 깊고 요인이 워낙 구조적이어서 내놓는 해법마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에 머무르고, 그러는 사이 고질은 더더욱 깊어만 간다.
그런데, 우리 사교육 기승의 원인을 공교육 부실에서 찾는 시각이 의외로 많다. 학교교육이 부족해 학원에서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의 자질과 열성 부족을 탓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학교가 학원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역대 정부의 대책들 중에도 그런 시각에서 나온 것들이 많다. 공교육 당국으로서 책임을 안에서부터 찾는 것이야 나무랄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본질이거나 전부라고 본다면 그 역시 ‘신발 위로 발바닥 긁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동안 그런 대책들이 별무효과였던 점이 한계를 말해준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양상과 구조가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반증일 텐데, 그래도 사교육의 종류부터 가려 찬찬히 실마리를 살피면 가닥이 전연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교육 중 가장 단순한 양상은 소위 ‘보습 사교육’이다. 학교의 수업단위가 다인수(학급당 35명 내외)이다 보니 개별지도가 어렵다. 때문에 따라가기 힘든 학습부진아들은 학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공교육 부실’을 탓하는 시각도 여기서 나올 수 있고 교사들의 노력으로 채울 여지도 이 경우는 가능하다.
또 다른 양상은 ‘예체능 사교육’이다. 학교에서의 예체능교육은 정서나 교양을 위한 정도에 머문다. 특기와 적성을 기르는 수준의 지도는 전문화(세분화~심화지도)가 필요해, ‘특목고’에서도 완전 충족은 어렵다. 따라서 개별 레슨이나 전문적 지도의 수요는, 모든 장르의 전문가들을 교사로 쓰기 전에는 사교육 수요를 막을 수 없다. 예체능 사교육은 효과만 있다면 ‘인적자본축적’의 의미가 있어 투자 가치도 없지 않다. 따라서 여건이 되는 대로 북유럽처럼 국가 책임으로 확대해,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문제 되는 것이 바로 ‘입시 사교육’이다. 소위 명문학교 진학을 위한 경쟁의 산물. 그래서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사교육 수요도 높아, 그들이 바로 사교육 열풍의 주역들이다.
대학간판으로 신분이 정해지는 학벌사회의 구조, 그리고 교육정책 주도 그룹에 젖어 있는 경쟁지상주의 교육관, 또한 학부모의 불안감을 부채질 해 먹고 사는 입시산업의 생존전략-바로 이것들이 “사교육 주범”3인방이다.
때문에, 학벌사회를 그대로 둔 채, 눈먼 경쟁을 부추기면서 “사교육비 절감”을 달성하기란 연목구어다. 그만큼 사교육비를 대신 내 주거나 아예 사교육비 쓸 시간이 없도록 아이들을 학교에 묶어두는 수밖에 없다. 요즘 교육당국의 대책이 바로 그 꼴이다.
이쯤 가닥을 잡고 보면, 처방이 바로 떠오르진 않더라도 현행 대책들의 한계는 보일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다. 무릎을 맞대고 찬찬히 지혜를 모을 일이다.

김 병 우 (교육칼럼니스트, 계룡 리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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