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눈까지 내려 겨울을 제대로 실감하고 있다. 눈 내린 숲을 바라보며 아침을 여는 내 모습에 문득 지난 일들이 스친다.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처음 청주로 내려 왔을 때  물기를 푹 머금은 스펀지 같은 도시라고 느꼈었다. 너무 조용하고 움직임도 없고 낡고 초라한 도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초겨울이라 을씨년스런 날씨 탓에다 내 마음이 울적했던 탓도 있었으리라. 청주로 내려온 지 벌써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청주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했고 늘 이 지역  이야기 할 때는 남의 이야기 하듯이 했다.

그러던 차에 남편과 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사를 해야 했고 이사를 한다면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가야 할지 아니면 여기 청주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주 중요한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고향과 타향, 꼭 그렇게 꼬집어 말하지 않더라도 내심 그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막상 이 곳 청주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원인 모를 상실감과 함께 가슴이 저려왔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란 이 곳에서의 10년, 나와 내 남편이 가장 찬란하고 열정적인 시기를 보냈던 이곳이 바로 청주였다. 우리 가족사의 대부분이 여기 청주를 배경하고 있었다.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들이 많이 있던 곳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돌이켜 보니 벚꽃 만개한 무심천도 있었고, 우암산 드라이브코스도 나를 위로했었다. 가로수 길을 달리면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던 햇빛도 너무 좋아했었다. 또 손만 내밀면 닿을 듯 한 거리에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늘 있었다. 

 청주도 자라있었다. 거리도 건물도 말이다. 물먹은 스펀지보다는 이제 뽀송한 솜이불 마냥 포근하기도 하다. 내 마음이 청주로 열려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지라도 내 눈엔 청주가 10년 세월만큼 자라있다. 청주를 앞으로 우리 가족의 고향으로 만들어 가면서 살아 볼까? 하는 배신스런(?) 마음도 든다. 

  지금 우리 가족은 너무나 조용하고 깨끗한 산남동에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이왕 청주 붙박이 하기로 했으면 가장 맘에 드는 마을에 둥지를 틀고 싶었다. 조용한 청주를 싫어했던 내가 가장 조용하고 깨끗한 주택지를 찾았다. 아마도 청주가 나를 길 들였나보다. 아파트에 익숙했던 나는 주택에서 느끼는 한가함과 여백이랄까 하는 이 느낌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면서 즐기고 있다. 마침 앞에 작은 숲이 있어 눈 내린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에 마당에 싸인 눈을 쓸어내는 재미 또한 새롭다. 남편은 오늘 아침에도 여기 저기 집을 돌보며 애지중지 한다. 그리고 늦은 밤 우리 부부는 추위도 잊은 채 손을 꼭 잡고 눈 내린 동네를 걸으며 이야기 했다. 우리가 청주에 붙박이가 될 결심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우린 잘 살 것 이라고.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들어오는 길에 멀리 우리 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 저 집에서 매일 아침을  맞을 것이며 우리 아이들은 이 다음에 고향을 떠올릴 때 아마도 청주를 생각할 것이다. 

주종희(산남동 주택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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