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일, 산남동으로 이사왔을 때 산남유승한내들 아파트 벽면에 새겨진 두꺼비 그림과 ‘두꺼비마을’이라는 글자, 두꺼비생태공원·두꺼비생태문화관, 그리고 우편함에 꽂힌 두꺼비마을신문 등등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삿짐을 푼 후에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두꺼비생태문화관에서 두모(두꺼비안내자모임) 8기로 활동하면서 봉사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영성, 영인)이 두꺼비마을신문 어린이·청소년 기자단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도 주민 기고 등으로 마을신문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기자가 되었다. 그는 바로 ‘박선주 마을기자’다.

박선주 마을기자
박선주 마을기자

‘여의주’
마을기자로서 박선주는 ‘여의주’라는 코너로 정체성을 다졌다. 여의주는 ‘여러분이 마을의 주인공입니다’라는 문장의 줄임말로서, 이웃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두꺼비마을신문의 인기 코너이다. 그는 여의주 코너를 통해 “서른 명 넘는 주민들을 만난 것 같다”며, “한 분 한 분 기억에 안 남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의주 코너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이웃이었는데 인터뷰를 하다가 전혀 몰랐던 미담을 알게 되었고 이를 여의주 코너에 실어 칭찬받았던 일을 일례로 들었다. 박선주 마을기자에게서 여의주 코너는 이웃을 발견하게 해주는 장이었던 것이다. 

‘폰 기자’
‘폰 기자’는 박선주 마을기자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의 이름이다. <폰 기자 이야기는 본지 230호 5면 참조> ‘취재하는 강아지 폰 기자’는 비인간(동물)의 시선으로 마을과 세상을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폰 기자’의 등장은 그의 마을기자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즉 생태계 약자의 입장에서 공동체, 환경, 생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맥락에서 ‘폰 기자’가 등장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폰 기자는 동물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코너이다. 현재 사람이 생태계의 가장 큰 포식자가 된 마당에 비인간인 동물들과 공감하면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환기시키고자 노력했다”고. 

반려견 폰 기자와 함께. 박선주 마을기자는 강아지(폰 기자)와 함께 산책하면서 사람도 만나고 쓰레기를 줍는다.
반려견 폰 기자와 함께. 박선주 마을기자는 강아지(폰 기자)와 함께 산책하면서 사람도 만나고 쓰레기를 줍는다.

솔직한 자기 이야기의 힘
박선주 마을기자의 장점은 솔직한 글쓰기에 있다. 심지어 그는 내밀한 자기이야기도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마을기자로 활동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예전에는 ‘도도하다’는 의미를 강조한 이른바 ‘차도녀’ 소리를 많이 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을공동체와 인연을 맺고 마을기자 활동을 하면서 “내가 나를 숨기고 살지 않아도 누가 공격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며, 게다가 “‘내 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서 스스로 쌓은 벽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흥미롭게도 그런 자신감에서 비롯된 솔직한 글쓰기는 그 자신을 치유하는 힘이 되었다. 게다가 그의 솔직한 글쓰기는 독자들의 공감도 자아냈으니 솔직한 글쓰기는 소통의 글쓰기이기도 했다.     

마을기자가 되면 좋은 점
박선주 마을기자는 “마을사람들과 친해진다”는 걸 마을기자의 장점으로 꼽았다. 고립되지 않고 이웃들을 만나 친해진다는 것은 각자도생의 경쟁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단히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마을기자가 되면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깝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 자신 마을기자라는 직책 덕분에 이웃들을 더욱 관심 있게 관찰하고 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백분 공감한다. 마을미디어인 하나인 마을신문은 ‘마을기자’라는 ‘신종’ 인간형을 낳았다. ‘마을기자’ 함의는 시민사회 NGO 활동가와도 다르고, 시민사회 활동가와도 다르며, 기성 기자와도 결이 다르다. 이들은 마을 속에서 주민으로 생활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사로 쓴다. 즉 이들은 마을 관찰자이자 기록자들인 것이다.

아이들 어릴 적 충주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 큰아들 영성이는 나무꾼 되겠다고 한참 나무가지 줍고 다닌 시절이었다.
아이들 어릴 적 충주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 큰아들 영성이는 나무꾼 되겠다고 한참 나무가지 줍고 다닌 시절이었다.

박선주 마을기자, 그 역시 2011년부터 10년 넘게 산남동(대원 2차)에 사는 주민으로서 마을공동체와 인연 맺어 자연스럽게 마을기자에 합류한 케이스다. 마을기자로서 박선주는 자신이 몸소 체험하고 관찰한 것을 마을신문에 담아 이웃과 세상에 전한 ‘꿀벌’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내년부터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마을기자 활동을 중단한다. 하지만 그가 몸소 체득하고 실천한 생명과 사람을 잇고자 하는 마을기자로서의 경험은 앞으로도 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늘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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