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도로명 유래도 알고 상가도 알고 ⑥

두꺼비마을신문에서는 생태교육연구소‘터’와 공동으로 송년호 기획특집으로 ‘두꺼비로’ 도로명 유래를 소개합니다. 생태교육연구소‘터’ 신제인 소장이 우리동네 ‘두꺼비로’ 도로명 유래를 밝혀주었고, 본지에서는 현재 두꺼비로에 주소를 둔 마을신문 후원 상가 및 배포처를 표시했습니다. 마을의 역사도 알고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이번 호 특집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전국에는 수많은 도로명들이 있는데 그중에 ‘콩쥐팥쥐로’(전북 전주), ‘사슴벌레로’(경기 파주)와 같은 독특한 도로명들이 여럿 있다. 청주시 산남동에 있는 ‘두꺼비로’ 역시 전국에서 유일하면서도 이색적이고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1. ‘두꺼비로’ 도로명 표지
사진1. ‘두꺼비로’ 도로명 표지

‘두꺼비로’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날까? 그리고 도로명을 왜 ‘두꺼비로’라고 하게 된 것일까? ‘두꺼비’와 ‘두꺼비로’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사진2. ‘두꺼비로’ 기점과 종점, 도로구간
사진2. ‘두꺼비로’ 기점과 종점, 도로구간

‘두꺼비로’는 <사진2>에 보이듯이 산남고와 샛별초 사이에 있는 삼거리에서 시작(기점)되어 푸르지오APT와 대원칸타빌APT를 지나 산남중과 영조퀸덤APT를 거쳐 유승한내들APT와 검찰청 위에 있는 삼거리에서 끝나는 (종점) 1,191m 도로다.
이 도로가 왜 ‘두꺼비로’란 도로명이 부여되었을까? 행정안전부의 도로명주소(juso.go.kr)에서 ‘두꺼비로’의 공식적인 도로명 부여 사유는 “원흥이방죽이 두꺼비의 서식지임을 반영하여 자연과 더불어 상생하자는 의미 반영”이라고 나온다.
과거의 ‘원흥이방죽과 두꺼비’ 그리고 현재의 ‘두꺼비로’를 생각하면 산남3지구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청주지역을 넘어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20년 전인 2003년~2004년의 두꺼비 살리기 운동에 대한 개괄을 통해 현재 ‘두꺼비로’가 생기게 된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예전에 산남동은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이곳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알을 낳으러 찾아온 두꺼비들 때문이었다. 두꺼비는 이른 봄이면 알을 낳으러 물가를 찾아오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산남동의 원흥이방죽은 두꺼비의 산란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원흥이방죽을 산란지로, 구룡산을 서식지로 살아가던 두꺼비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2003년 3월이었다. 산책하던 주민에 의해 발견된 두꺼비들은 생태교육연구소 ‘터’의 자연안내자 활동을 하던 이상현님에게 알려졌고, 이후 함께 활동하던 자연안내자 회원들이 원흥이방죽을 탐방하게 되었다. 탐방에 나선 날, 셀 수 없이 많은 두꺼비와 두꺼비 알을 보고 모두 놀랐다. 그렇게 많은 두꺼비를 본 건 처음이었고 이후 두꺼비에 관심을 갖고 방죽을 찾게 되면서 이곳이 곧 산남3지구 택지개발로 사라질 예정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진3. 2003년 산남동과 원흥이방죽 전경
사진3. 2003년 산남동과 원흥이방죽 전경
사진4. 산란을 위해 원흥이방죽으로 향하는 두꺼비들
사진4. 산란을 위해 원흥이방죽으로 향하는 두꺼비들
사진5. 산란을 하고 있는 두꺼비들과 두꺼비 알
사진5. 산란을 하고 있는 두꺼비들과 두꺼비 알

그리고 2003년 3월 29일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는 원흥이방죽 일대에서 ‘도심속의 봄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어린이자연학교를 진행했다. 이때 참석했던 어린이들과 자연안내자들이 ‘두꺼비를 살려주세요’라는 현수막을 쓰고 바람을 외쳤다. 어린이들의 삐뚤한 글씨였지만 두꺼비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쓴 현수막을 거는 것으로 두꺼비 살리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사진6. 2003년 어린이들이 처음 걸었던 현수막
사진6. 2003년 어린이들이 처음 걸었던 현수막

그리고 5월에는 알에서 깨어난 수만 마리의 새끼두꺼비가 수로를 따라 서식지인 구룡산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전국 TV에 방송되면서 원흥이방죽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사진7. 수많은 새끼 두꺼비들이 이동하는 모습
사진7. 수많은 새끼 두꺼비들이 이동하는 모습

이후 환경운동가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잇따라 방문했고, 새끼두꺼비가 사투를 벌이며 이동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방죽을 보전하자는데 마음을 모으게 된다. 

(13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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