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오래 전 가족들과 연을 끊고 집을 나간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황망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에게는 수억 원의 채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A씨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A씨의 아버지와 같은 피상속인이 남긴 빚을 ‘상속채무’라고 부르는데, 이 상속채무의 청산을 위한 제도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상속재산파산’과 민법의 ‘한정승인’, ‘재산분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중 상속재산파산은 채무초과, 쉽게 말해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은 상태에 있는 상속재산을 파산절차를 통해 공정하게 청산하는 제도입니다.
기존에는 민법상 한정승인 제도가 많이 활용되었는데요. 한정승인의 경우 상속인 스스로 청산절차를 이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이것이 상속채무 자체를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한 책임만 상속인이 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상속인의 입장에서는 상속채무를 완결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여러 번 거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면 상속재산파산 제도의 경우 상대적으로 간이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통해 상속채무를 청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상속재산파산은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파산절차를 신청하지 않고 사망한 경우 상속인 등의 신청에 의해 상속재산에 대해 이루어지는 파산절차입니다. 상속재산에 대한 파산선고가 있는 때에는 원칙적으로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한 것으로 보게 되고, 상속채권자와 수증자는 파산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상속재산과 상속인의 고유재산이 엄격하게 분리되므로, A씨 사례에서 보면 아버지의 채권자가 아닌 A씨나 어머니의 채권자는 아버지의 상속재산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상속재산에 속하는 모든 재산이 파산재단을 구성하고,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파산재단에 대한 관리 및 처분 권한을 가지고 청산절차를 진행하므로 상속인은 상속채무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고, 상속채권자의 입장에서도 상속인이 임의로 상속재산에 손을 대는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으며 혹시 상속인 중 일부가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에도 후순위상속인을 순차로 찾아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점이 많은 상속재산파산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은 실무상 신청에 필요한 서류가 너무 많은데다, 장례비용과 신청 비용(송달료, 인지대 등)을 상속재산에서 공제해주지 않거나 공제 범위가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서울회생법원은 2022년 12월 불명확한 상속재산 파산사건의 처리기준을 새롭게 정하고, 상속인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상속재산 파산사건의 처리’에 관한 실무준칙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새로 마련된 실무준칙은 상속재산파산 신청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제출 목록을 명시하였고, 망인과 생계를 같이 하던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원칙적으로 망인 명의로 된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중 압류금지채권을 상속채무변제를 위한 재원에서 제외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상속인이 납부한 인지, 송달료, 예납금 등 신청 비용은 상속 재산에서 우선적으로 충당하고, 상속인이 지출한 장례비용 중 일정액을 원칙적으로 상속재산에서 충당하되 상속재산의 규모에 따른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였습니다.
법원은 상속재산파산제도를 정비함으로써 그동안 상속인에게 부담을 주거나 상속재산파산신청을 기피하게 만든 장애 요소를 크게 줄였기 때문에 앞으로 상속재산파산 절차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는데요. 상속인과 상속채권자 모두의 입장에서 많은 장점이 있고,사망한 사람의 채무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청산된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인 면의 효용성도 충분한 만큼 이 제도가 보다 널리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아롱 변호사(변호사박아롱 법률사무소)
박아롱 변호사(변호사박아롱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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