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귀가해서 아빠와 대화를 나눈다. “아빠! 오늘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전원주택이야. 그런데 엄청 멋지고 예뻤어. 우리도 그런 집에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는  호들갑 떠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래” 하며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그 집이 20억이 넘는대” 그때야 아빠는 “그  집이  어디  있는  건데. 와  좋은  집이네.”라고  물으면서 관심을  가졌다.
오래전 아파트 광고에 기억나는 카피가 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 비싼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한 인간의 품격이 올라간다는 천박한 말이 통용되는 사회다. 그러다 보니 인근 아파트와 차별하기 위해서 아이들 통행로도 막고, 심지어 놀이터 출입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소식도 접한다. 대화 속의 아빠처럼 평당 얼마, 몇십억 하는 말이 들어가면 가보지 않고도 좋은 집, 부잣집으로 인식하는 것에 무감각하다.
얼마 전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나와도 좋은 인연으로 여러 가지 지역 현안에 공동대응하고, 때론 소주잔 기울이며 돈독하게 지냈던 조광복 노무사가 집 짓는 과정을 적은 ‘작은 집을 짓다’란 책을 발간했다. 반가운 마음에 두 번을 읽었다. 그분의 생각과 삶에 대한 철학을 익히 아는 처지라 글 속에 그의 얼굴이 보여 미소짓게 했다. 두어 번 다니러 오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아직도 뭉그적거리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에 해발 500m의 산중에 11.3평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 웬만한 농막보다 작은 집을 짓는데 정확히 1년이 걸렸다고 한다. 부제가 ‘자립과 자존, 생태 존중, 우정과 환대의 집 짓기’이다. 어떤 생각과 어떤 과정으로 집을 완성했는지 알 수 있다. 작가는 집을 짓기 전 살고 싶은 집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작은 집을 단순하게, 수세식 변기와 정화조를 두지 않고, 생태 변기를 설치한다. 똥과 오줌은 삭혀서 밭에 거름으로 쓴다. 주방 싱크대 아래 통을 두고 설거지물을 받아 밭으로 보낸다.’ 등 간략하게 정리했다. 특이한 점은 외등을 설치 않는다는 것이다.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서란다. 생태를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전원주택처럼 전망 좋은 곳에 잔디를 곱게 깔고 뒤에는 텃밭이 있고 지인들 놀러 오면 함께 할 수 있는 테라스에 바비큐장이 있는 그런 집이 아니라, 산자락과 모나지 않고 최대한 아껴 쓰며 내가 가진 것을 다시 자연에 돌려주는 그런 집을 작가는 원했다. 그런데 문제는 작가는 집을 지어 본 경험도 없고, 집을 짓는 데 필요한 행정, 장비, 기술 등이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습득하고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지인의 힘을 빌려 공백을 채웠다. 그러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다. 그래서 책을 읽는 재미가 야무지다.
집은 편안한 휴식처다. 가족이 모여 식사도 하고, 정담도 나누고 잠을 청하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한 평 남짓한 공간만 있어도 몸을 누일 수 있고, 행복도 얻을 수 있다. 작가는 작은 집을 고집하는 이유로 경제적인 면도 있지만, 행복의 가치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삶과 자연에 대한 철학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이 책은 ‘1장 긴 여행 그리고 인연, 2장 내 손으로 지을 결심, 3장 집 지을 준비, 4장 집을 짓다, 삶을 짓다.’로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짜배기 초보가 좌충우돌하며 집터를 다지고 골조를 세우는 과정을 시작으로, 내부 마감까지의 전 과정이 상세히 나온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와 함께 집을 짓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작가가 노무사를 하며 도움을 줬던 분들이 주말이면 그곳을 찾아 일손을 도왔다. 노무사란 직업의 특성상 노동자들과 상담할 기회가 많은 만큼 각자의 기술이 있어 집을 짓는 데 힘을 보태는 장면이 많다. 가끔은 의견 충돌도 보이고 그분들이 가고 나면 맘에 안 들어 투덜대는 장면도 나온다. 집을 짓는 과정에 연대와 우정이 있어 좋았다. 업자가 분양하는 토지에 돈만 주면 그림책에 나올 듯한 이쁜 집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집엔 땀과 볕과 사람의 향기로 11.3평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아내와 떨어져 사는 주말부부의 애틋함도 있지만, 벽지를 바르다 서로 언쟁하고 삐치는 모습도 아름답다. 2천만 원 남짓한 돈으로 ‘볕 좋은 날, 바랭이 명아주’로 삶터의 이름을 짓고 ‘그러니 볕 좋은 날 오소서, 바랭이 명아주 노는 곳!’으로 끝을 맺는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은 대다수 사람의 로망이다. 
아파트와 도시 생활이 주는 피로감 때문이다. 책을 덮고 웃었다. 청주에 살 때 대소변을 모았다가 회인에 있는 밭에 뿌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생태를 존 
중한다고 해도 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한 내 말이 기억난다. 안부 차 건넨 통화에서 꼭 한번 다녀가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눈꽃도 보고 반딧불이도 볼 수 있는 그것
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 그가 보고 싶어서

오창근 칼럼리스트
오창근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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