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의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혹자들은 이제 공동체가 필요없어졌다고 말한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개인들이 충분히 자기의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에서 공동체는 개인을 억압하거나 규제하는 거추장스러운 문화적 질곡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근대사회와 문화를 타파하고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고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현대 시민사회에서 꼭 필요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공동체는 구시대의 것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인가? 공동체의 의미와 형태가 시대마다 다를지언정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보다 본질적인 요소라고 볼 때 지금의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특히 산남동에서 ‘마을공동체’, ‘두꺼비마을공동체’라고 일컬어지는 특별한 맥락을 지니는 공동체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깊게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3년에 ‘산남3지구 아파트개발’이라는 역사적 시기에 구룡산의 두꺼비 서식지와 신도심의 형성이라는 개발의 욕망이 정면충돌한 후 소위 ‘상생협약’을 거쳐 현재의 ‘산남동지역’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모여든 주민들은 자신들이 이주해오기 이전에 이곳에서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눈을 감고 있지 않았고 두꺼비의 서식지 보호라는 생태적 요구를 자신들의 삶의 환경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어 왔다. 이렇게 해서 마을공동체는 형성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것은 역사가 되어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산남동 마을공동체의 20년의 역사는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산남동 마을공동체라는 주체의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지역적인 것은 지구적인 것이다’라는 경구에 걸맞는 자기이야기를 지닌 공동체로 성장해 왔다. 

모든 공동체는 탄생과 더불어 성장의 과정을 거친다. 산남동 ‘두꺼비마을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마을공동체가 성장한다는 것은 그 안에 여러 세대의 성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세대가 가지고 있던 비전과 가치를 새로운 세대가 대치하려는 끝없는 갈등과 고통을 거친다는 것이다.

산남동에서 두꺼비마을공동체의 성장은 이렇게 여러 세대 혹은 주체들간의 갈등과 화합의 연속이었다. 돌아보면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 사건들을 통해 여러 주체들이 등장했다가 떠나고 새로운 주체가 새로운 방식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어떠한가?’ 아주 모호하고 불완전한 질문이지만 현재의 공동체 주민들에게 아주 무거운 의미로 다가오는 질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 시기는 ‘위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하는 시대적 우울감에 압도되어 있는 시기이다. 정치도 경제도 암울해져 간다고 느끼는 이 시기에 우리는 기후위기, 경제위기, 코로나의 위기, 세대 격차의 위기, 교육의 위기 등등 끝없는 위기의 연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 모두를 우울하게 하는 이러한 감정의 늪에서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는 우리에게 서로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 누군가가 동의해주었고 함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런데 우울의 시기에 그러한 손길이 점점 더 멀어지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너무나 황당한 정치적 부조리 앞에서, 또 너무나 커다란 슬픔을 경험한 피해자 옆에서, 지구 전체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기후붕괴의 소식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제 다시 공동체가 필요하다. 세대의 변화이든 주체의 욕구가 변화되었든 그것들 모두가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추구하던 ‘마을공동체 규약’을 제정하자던 움직임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다소 늦어진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다시 마을공동체 규약을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공동체를 이루는 이웃을 불러내야 한다.

 

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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