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울프 지음(2018). 전병근 옮김(2019, 2022). 펴낸 곳: 어크로스. p.359

 

독서의 중요성은 누구나 말한다, 그런데 정작 사랑하는 자녀와 자신의 독서 수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이고 독서량도 미심쩍다. 이상적인 부모상으로 기도하는 뒷모습 
과 독서하는 앞모습을 자녀의 뇌리에 암암리에 새겨두리라 다짐했건만 자식의 뇌리 
에는 흔적조차 없음에 절망한다,

구어(口語)는 좀 더 기본적인 기능으로 전담유전자가 있어 최소한의 도움만으로도 스스로 말로써 이야기하고 이해하며 생각하는 능력 때문에 어린아이는 어떤 언어 환경에서든 사실상 아무런 가르침 없이도 그곳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읽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성취하는 것이고, 읽기 회로가 형성되어야 하며, 뇌의 가소성(읽기 회로의 청사진이 없다)으로 특정한 쓰기 체계(표음문자인지 표의문자인지), 읽기 매체(책인지 스크린인지) 등 외부요인에 따라 뇌의 회로가 어떻게 형성될지 결정된다고 한다. 즉, 읽기 회로가 형성되는 동안 어떤 과정을 따르느냐에 따라 읽고 생각하는 방법에도 심대한 차이가 생긴다.

우리의 지적 진화는 소크라테스의 구술문화(구전, 기억력 의존)→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자문화(시각적 정보처리)→구텐베르크 이후의 책문화(인쇄)→스크린 문화(디지털, 서버의 장기기억 임차)의 순으로 매체가 달라지면서 뇌의 활성화 부분도 달라졌다. (책읽기의 뇌에 대해서는 별도 논의 필요) 스크린 읽기의 특성은 훑어보기(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단어를 재빨리 훑어 맥락 파악), 건너뛰기, 대충 읽기, 구체성과 공간성의 결여를 특징으로 시간순으로 기억을 배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텍스트가 짧을 때는 일반적 이해력에서 매체에 따른 중요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텍스트가 길어지면 달라졌다. 읽기에서 경로의 감각은 중요하다. 시공간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고 되돌아가서 뭔가를 더 알 수 있게 한다. 인쇄물 읽기에 수반되는 감각적인 차원은 정보에 중요한 여분(단어에 기하학을 더함), 촉각이 또 다른 차원을 더해서 전반적인 이해에 도움이 된다. 단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면 뇌의 활성도가 커지고 활용가능한 의미의 수준도 높아진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보의 조각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인터넷은 인상적인 시각적 지능을 발달시키는 대신 심층처리과정(주의 깊은 지식 습득, 귀납적 분석, 비판적 사고, 상징과 반추 등)을 희생시킨다. 그러나 시대를 역행하여 살 수는 없기에 문해기반 회로와 디지털기반 회로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하고 양손잡이 읽기 뇌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5살부터 10살까지 인쇄기반은 물론 디지털 기반 읽기와 학습의 다양한 형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한다.(이중 언어 학습자에 관한 지식에 토대, 이중언어학습자는 단일언어 학습자보다 언어적 유연성이 높다. 상당 수준의 자동화된 지식과 유연성, 사고와 언어는 처음에는 분리되어 있다가 점차 조금씩 연결됨)

4학년 시기에 원활하게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모든 교육적인 목표가 아이들에게 무의미해진다고 한다. 언어와 학습 능력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엄청난 격차가 수백만 아이들의 삶에 영구히 고착되기 전, 인생의 첫 2,000일(0세~5세)의 읽기회로 구성 요소들이 자리잡는 시기, 두 번째 2,000일(5세~10세, 유치원~5학년)의 초점 맞추는 시기, 읽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에 주목하자.

 

공식적인 학교교육이 시작되는 첫날 이미 인지적, 언어적 차이가 심각한 상태이다. 평균이거나 평균 이상의 아이들은 지도만 제대로 받으면 탁월할 것이고, 철자와 발음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알파벳이나 국어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 환경의 아이들)은 시각적인 문제도 점검하고, 읽기장애나 난독증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일상적인 읽기 장애로 수모를 겪기 전에 예측하고 검사받고 치료해야 한다.

 

“만약 인간이 글을 배우면 이것이 그들의 영혼에 망각을 심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기억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문자에 의존하게 되면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자기 내부에서 가져오는 대신 외분에 표시해 둘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려한 소크라테스의 말도 기억하고 싶다.

읽기는 인류의 뇌가 오랜 진화 끝에 획득한 놀라운 능력이다. 이는 타고난 것이 아닌 학습과 숙달에 의한 성취이기에 언제든 다시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이 그러한 위험한 때이다. 비판적 사고와 성찰의 능력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에 크나큰 위협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미래를 살아 갈 젊은 세대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자녀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좋은 사회의 3가지 삶은 지식과 생산의 삶, 이해 속에서 나오는 즐기는 삶, 관조의 삶이다. 특히 관조의 삶은 자율적인 정신의 삶인데 읽기가 이런 삶의 기초가 되며, 우리 공동의 지성과 연민, 지혜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전수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독서가 습관이 되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 해보게 된다.

 

구윤모 교장(산남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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