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지난 우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을 했다. 

표정은 전혀 말하는 것 같지 않은데 가끔 한 단어씩 툭 뱉을 때가 있다. 
어느 날 자료실에 선생님이 뭘 찾으러 들어간 사이 우진이가 그쪽을 향해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문이  살짝  열려  있기는  했지만  설마 했다. 자료실에서  선생님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도  선생님이  나오지  않아  부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어린  우진이가 부르는 “선생님” 소리에 가슴이 찌릿해졌다. 

 

나를 가르쳐 주셨던 많은 선생님을 기억해 보았다. 탁아소를  다닐  때 새끼줄을  묶어서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미경이가? 내 선생님이다 !~”라고 하시며 청주에 오실 때 전화해 주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

선생님은  그 많은  제자를  어떻게  기억하시냐고  여쭤 보면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너거들은 내 청춘 아니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선생님은  나를  젊은  날  가장 
아름다울 때 만난  제자로  기억해 주고 계신다. 

필자는  직업으로  유아교육을  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현대  문학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께서 학생들이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꼭 자신은 ‘선생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하시는 교수님이 계셨다. 학문이나 기예(技藝)를 가르치는 교수(敎授)로 불리기보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先生)님으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셨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선생님은 하늘 같은  분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거리가  많이  떨어진 우리  마을까지  선생님이  학생  지도를  나오셨다. 우리 집에  선생님이  들어  오시는  데  우리  어머니는  신발도 
신지  않으시고  마당에  나가서  선생님을  맞이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선생님은 어려운 분이었고, 내 자식의  눈을  밝혀  주시는  존경의  대상 
이었다.

올해는 유난히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어느 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후 전국의 많은 선생님이 학교를 벗어나 교권 회복을 
위해 집회하고 있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어린이집은 보호와 교육을 함께 하  는 곳이기  때문에  아동학대에  대해  예민하다. 아동학대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선생님은 아이를 가르치고 훈육하는 것을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본다.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간호사가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듯 선생님도 직무에 충실할 것을 서약하고 그것이 지켜지는 교육의 장이 되면 좋겠다.

최미경원장(계룡리슈빌어린이집)
최미경원장(계룡리슈빌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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