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 시대가 만든 신조어였지만 사용을 꺼리게 되는 끔찍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신조어라는 것도 시대의  반영일진댄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시대적 고통이 지금 우리사회의 근저에 흐르고 있다면 차라리 끔찍하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지도 못할 정도의 절망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살아왔던 지난 60여년 간의 한국은 엄청난 변화를 이루어내고  겪어낸  역사였다. 그중에  가장  큰 발전이라면  경제적  발전과  정치의  민주화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절망감의  근원에는  우리가  이룩해낸  정치적  자유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절망감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충격이  도대체  언제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 말을  듣고 
정신이  퍼뜩  들어서  비로소  우리의  절망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아뿔싸 우리는 나라를 팔아먹는 대통령을 뽑은 것인지도 모르겠구나!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나의 선택은 달랐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그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래도 잘 하겠지 하는 기대는 그 다음날로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깨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 같다. 그런데 급기야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그는마음껏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하여 하릴없이 역사책을 뒤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한국사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그치고 말았다.

광복절의 경축사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적어도 내가 살아온 60년간 대한민국 국민들은 부지런히 일했고 정신적으로 깨어났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회 문화를 압도하던 전근대적 질곡을 걷어내고 어였한 시민사회의 시민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 뒷받침은 물론 부지런히 일하여 번 경제적 성과로, 그리고 수많은 애국시민 들이 흘린 피와 그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시민들의 함성으로 이룩한 정치적 자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정치적 ‘자유’라는 말도 하기 싫어졌다. 자유란 말만 수십 번을 반복하는 경축사를 들어야만 했던 작년에는 그래도 그러려니 했었다. 우리의 시민적 자신감은 경축사에서  무슨  말을  하든  이미  우리는  광복절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대해  더 깊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훌륭한  광복절  경축사들이  있었지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당연한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우리는  광복절  경축사가  아니라  새로운 국치일을  맞이하는  줄 알았다. 아니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아도  이것은  항복문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광복이란 개념을 부정하는 광복절  경축사였다. 그리고  일본정부와  다정하게  손잡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라는  을사오적들이나  했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지금은  그 당의  정치인들이  자기  현수막에  그 말을  받아쓰기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나’하고  탄식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이제 광복절 경축사에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세우지 말고 시민들이 경축사를 하자. 시민들은 이 역사를 지켜왔고 되찾아냈다. 시민의 광복절이 되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북한 지도자도 두려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들에게 경축사를 쓰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미래를 그려낼 경축사를 쓸 것이다. 백 열세 번째 맞이하는 국치일에 이런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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