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책방’은 마을의 독서문화를 진작시켜보자는 취지에서 2023년 신년호부터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현재 구윤모(산남중학교)교장, 손현준(충북대)교수, 오창근 칼럼니스트, 최석진 변호사 네 명의 필진이 매호
번갈아 기고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애독 바랍니다. /편집자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1년 내내(이 책의 영문 제목이 ‘언제나 제철’임) 탐스럽고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없으면 이상할 것이다. 인간은 탐스럽고 달거나 지방질이 많은 음식을 보면 일단 먹고 보자는 본능이 작용한다는데, 이는 인류가 항상 굶주림에 시달린 결과라고 한다. 신석기 농업혁명 시대에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풍요로운 식탁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많은 연구자들과 농부들의 노력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녹색혁명’ 덕분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울 수는 없으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풍요로운 식탁의 위험성을 알리는 책을 소개한다. 책의 저자인 롭 던은 응용생태학자이며, 인류 역사상 대량으로 단일품종을 재배하다가 병원체와 해충의 공격으로 재난을 겪은 여러 사례를 근거로 현재 또는 장래의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을 경고한다.

이 책의 제목인 ‘바나나제국의 몰락’ 은 1950년대에 대량으로 재배되던 ‘그로미셸’이라는 바나나 품종이 파나마병으로 멸종된 후 그 품종보다 맛이 떨어지는 품종인 ‘캐번디시’가 어떻게 전세계를 장악하게 되었는지로 시작하는데, 오히려 아일랜드 기근에 관한 지적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신대륙에서 전해진 감자는 한때 유럽인들 특히 아일랜드인에게 행운의 선물이었다. 감자는 병충해 없이 춥고 습한 기후에서도 잘 자랐고, 이로 인해 인구가 증가할수록 수확량이 좋은 감자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그런데, 1845년을 전후하여 원산지인 아메리카에 있던 감자역병이 유럽으로 유입되어 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었는데, 특히 감자 이외의 작물이 없던 아일랜드는 치명적이었다. 1947년 아일랜드 인구는 약 800만 명 정도였으나, 그중 약 50만명이 죽고 50만 명은 굶주림에 지쳐 고국을 떠났다고 한다.

브라질은 세계 2위의 초콜릿 생산국이었으나, 1989년 한 카카오 농장에서 빗자루병이 발병한 지 4년 만에 브라질은 초콜릿 순수입국이 되었다. 어떤 작물도 잠시 동안 해충이나 병원체로부터 도망칠 수는 있으나 영원히 도피할 수는 없고, 단일 품종의 대규모 농장은 해충에게는 풍부한 먹이일 수밖에 없어 일단 발병하면 이를 제어하는 것은 불 
가능하다.

“저항력이 있는 작물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려면 작물의 야생종 친척과 이들을  공격하는 병원체와 해충이 필요하고, 그들이 공존하는 장소도 보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농부들은 섞어짓기를 하거나 여러 품종을 한꺼번에 재배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어떤 해충이나 병원체도 충분한 먹이를 얻지 못하여 대유행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자연선택이라는 말이 있는데, 자연선택 행위자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는 기생충, 병원체, 장기적인 기후변화 등이 있다. 따라서, 기생충 등으로부터 저항력이 있는 작물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려면 작물의 야생종 친척과 이들을 공격하는 병원체와 해충이 필요하고, 그들이 공존하는 장소도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몬산토를  비롯한  농산업회사들은  해충과 제초제에 저항력이 있는 유전자를 삽입한 작물을 대량으로 공급하여 우리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  작물은  건강은  물론  농약과  비료 살포로  인한  환경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충과 병원체, 기후변화로부터 벗어나는 능력에 대한 것이며, 나아가  그들  농산업회사가  돌발적인 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나아가  우리의  운명을  그들에게  맡기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타당한지이다. 

“곡물의 이동이 중단된다면, 식량자급율이 낮은 대한민국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1957년   식량자급율은 85.7%였으나, 2020년 현재  곡물  자급율 20.2%, 식량  자급율 45.8% 정도인데, 우리는 여전히 개발논리에 따라 논밭이나 산림을  깔아뭉개서  공장이나  아파트, 전원주택, 휴양지를  건설하고  있다. 

몬산토  등 거대  종자회사들의  유전자조작 종자가 해충이나 병원체로부터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거나, 우크라이나전쟁  등의  영향으로  곡물의  이동이  중단된다면, 식량자급율이  낮은  대한민국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식량, 종자, 다양한 품종의  농산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고, 근본적으로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해충과  병원체, 야생작물이  공존할  수 있는  자연을  보전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최석진 변호사(최석진법률사무소)
최석진 변호사(최석진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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