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청주  폭우피해  당시  오송  지하차도에서 14명이 사망했다.

그날 747버스에서 첫 발견 사망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나와  독서 모임을  함께했던 조명국이다.

우리 독서모임은 둘째 넷째 주 토요일 아침 6시 30분에 시작한다. 주로 인문학 책 중심으로 새벽에 하다 보니 얼마나 가겠느냐며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무려 4년째 잘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참가자가 계속 늘어났다. 만족감도 커졌으며 참여자들끼리의 돈독함도 좋았다. 우리 독서모임의 특색으로는 토요일 새벽모임이라는 점, 나이 불문하고 모두 선배님으로 호칭한다는 점, 모래시계를 이용해 평등한 발언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20대 청년들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또 하나의 특색이라면 독서모임 출신 청주시의원이 많다는 점이다.

명국이는 독서모임의 총무였다. 독서모임 처음부터 참여했던 서른한 살의 충북대를 졸업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남 이야기 잘 들어주는 참한 청년이었고, 이번 시즌에는 무려 여덟 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의지를 보였으며, 평소에도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아파하고 공감하던 청년이었다. 비록 비정규직일망정 취업되었다며 밥 사겠다고 미소 짓던 청년이었다. 한 5년쯤 알고 지냈던 것 같다. 아니 내가 유일하게 단체장으로 있던 
독서포럼의 총무로 마냥 함께 해왔던 든든한 동료였고 뭔가 도모할 때도 곁을 지키던 옆지기였다. 명국이의 빈소 차림부터 목련공원 화장 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자 했다. 처음에는 아들 하나에 딸 둘인 집안 동생들과 상주에서 올라오신 부모님과 가족들이 너무 조촐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명국이를 좋아하던 친구들과 바둑동아리 친구들이 목련공원까지 수십 명이 함께 지켜줘서 평소 명국이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았던 청년이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이번 폭우참사는 인재라고 했다. 빈소를 지켜보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고 수습 의지도 없으며 심지어 합동분향소 역시 첫날부터 말만 빙빙 돌리다가 사망자 대부분의 발인이 끝난 후에 비로소 만들어졌다. 가족들 떠난 합동분향소, 이미 진이 빠져 절망감 가득히 집으로 돌아간 가족들이 합동분향소를 지킬 수 없음을 저들은 알아챘던 것이다. 버스 안내만 잘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였다. 아니 물들어오기 시작한 지하차도 차단만 했어도, 새벽녘 홍수통제가 제대로 지켜지기만 했어도, 지하차도 네 대의 배수 시설이 작동이 되었거나 혹은 수많았던 신고전화를 119든 112든, 지자체든 홍수통제소에서 대처만 했더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인재였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시민단체들은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면서 도지사와 시장, 행복청장을 고발했다.

벌써 몇 번째 참사 후 잊지 말자고 다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을 이번에도 되뇌여본다. 그러나... 이 허망함... 내일은 명국이 없이 진행되는 첫 번째 독서모임 날이다. 이번 모임은 조명국선배를 모신 목련당에서 하려고 한다. 적어도 우리만이라도 잊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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