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책방’은 마을의 독서문화를 진작시켜보자는 취지에서 2023년 신년호부터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현재 구윤모(산남중학교)교장, 손현준(충북대)교수, 오창근 칼럼니스트, 최석진 변호사 네 명의 필진이 매호 번갈아 기고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애독 바랍니다.
/편집자주

 

 

나는 의학교육에 몸담으며 입학사정 일을 할 때 직업전문성의 핵심인 ‘이타성’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심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노회찬이라는 인물의 소년기와 청년기가 궁금해서 56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책은 그의 정치에 대한 평가보다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그의 62년 삶의 여정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바라본  기록이다. 

노회찬은 대한민국에 명실상부한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만들고  진보정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대중에게 알려주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과 영혼까지 바친 우직한 정치인이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마음이  따뜻한  유물론자, 과묵한  달변가, 변화에  열려  있고  첨단을  즐길  줄 아는  원칙주의자, 클래식 음악 애호가, 소년의 호기심을 지닌 어른,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비판받지  않았던  페미니스트, 불온한  낭만주의자…… 노회찬을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언어는  그의  삶이  얼마나  농밀하고  풍요로웠는지  확인시켜준다.

그는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첼로를  연주하고  고등학생 때 작곡을  할 정도로  재능이  많았다. 그의  노래를  통해 알게  된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신라시대에 살았던 최항은 자신의 부모가 싫어하던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아서 그 둘은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결국  그는  사망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지 8일째  되던  날 밤에  그의  혼령이 연인을  찾아갔다. 여인은  그가  죽은  줄 모르고  반갑
게 맞이했고 그는 그녀에게 석남꽃 가지를 꺾어 자신의 머리에 꽂으며 그녀에게도 건넸다. 그리고 부모가 결국 결혼을 허락하여서 그녀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여자는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가  담을  넘어 들어간  뒤 새벽이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찾아온  이유를  밝혔는데  그  집  사람들은 그가  죽었고  오늘이  발인이라고  했다. 여자는  석남꽃 가지를 보여주며 그의 머리에도 꽂혀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그녀가  관을  열어보니  사내의  머리에  정말로  석남꽃  가지가  꽂혀  있었고, 그의  옷과  신에는  밤길을  걸어온  흔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여인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는데  그  소리에  놀란  최항이  벌떡  일어났다. 둘은  결혼하고 3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국판  해피엔드  버전이다. 셰익스피어보다  먼저  기록된  것이니  이것이  더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서사를 접한 서정주 시인은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라는 시를 썼고 이 시에 고등학교 2학년의 노회찬은 곡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책 108쪽).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라 깨어 나면 /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 한 서른해 만 더 살아 볼거나 /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거나

노회찬은 경기고등학교 재학 때 민주화운동에 뛰어들 것을 결심하고 노동현장에서 정치일선에서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다. 5년전 7월 23일 허망하게 떠나기까지 투쟁의 동지이면서 연인으로 사랑했던 아내와 결혼해서 딱 서른 해를 살았다. 그의 두 번째 기일에 맞추어 내가 활동하는 두꺼비앙상블 합창단에서 4부합창곡을 준비했다. 그가 서른 해 만 더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이 노래를 또 부르게 된다. 다섯 번째 기일에 청주시 중앙동에서 열린 ‘노회찬평전 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이 책을  들고 노래를  다시 불렀다.

 

 

손현준교수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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