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선 편집디자이너를 만나다 !

세상에는 다양한 디자이너가 존재한다. 디자이너라고 하면 무엇인가 꾸미고 가꾸는 사람. 우리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손길로 무엇인가 좀 더 아름다워지고 편해지는 것을 상상한다. 창의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이너. 우리 두꺼비마을신문에도 오랫동안 함께 일한 편집디자이너가 있다. 10년 이상 손길로만 등장했던 임혜선 디자이너를 통해 디자이너라는 직업, 또 그녀만의 디자인 인생을 엿보았다.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임혜선 디자이너가 만든 청주 이정골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임혜선 디자이너가 만든 청주 이정골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림과 활자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기록을 좀 더 편하고 보기 좋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해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편집디자이너라고 하죠. 저는 대표적으로 마을신문을 만들고, 회사나 학교, 단체의 소식지나 제품 카탈로그, 리플렛, 포스터, 이야기책 등 사용 용도나 쓰임에 따라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클라이언트와 충분히 상의하며 일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디자인을 하게 되셨나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고 패션이나 디자인 쪽에 관 심이 많았어요. 의상디자인과, 의류학과, 패션디자인과 등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교사가 되길 바라셨고 타협점을 찾은 것이 사범대 가정교육과였죠. 하지만 배우는 내용이 실무보다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더 늦기 전에 내가 즐거운 공부를 찾고 싶어졌죠. 그래서 산업디자인과를 부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병행이 힘들긴 했지만 행복하고 재미있었어요. 전국 디자인 공모 전에 도전해서 수상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전공 공부도 끝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부전공이 전공이 되다!
임혜선 디자이너는 졸업 후 서울에 있는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고 직장과 병행하며 MBC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멀티미디어PD과정’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순수 전공자가 아니라 늘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시도와 시각, 다양한 매체와 접목한 작업을 통해 차별성을 두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배우고 실천하며 쌓아온 실전 경험, 배움의 열정이 부전공을 전공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고향 청주
어린 시절, 수자원공사에서 근무하신 아버지를 따라 댐이 있는 곳으로 온 가족이 이사 다니며 경기도, 전라도, 경상 도, 충청도 등 전국을 살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임혜선 디자이너. 다양한 문화, 여러 지역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새로운 도전이나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그다지 없다고 했다. 임혜선 디자이너 형제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청주에 정착하였고 자연스레 청주가 고향이 되었단다. 디자인 회사에서 만난 남편(헬멧디자이너)과의 인연으로 청주에서 결혼도 했고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두꺼비마을과의 만남
디자인 일의 특성상 야근, 밤샘 작업이 많아 아이들 돌보기 힘들다. 임디자이너는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아이들과의 시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산남동 남부은샘교회 문화센터의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금천동 주민인 임디자이너가 처음으로 산남동을 찾게 되었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휴게실에서 기다리면서 두꺼비마을신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즈음 막 발행된 마을신문은 막 옹알이가 시작된 아이처럼 서툴지만 아주 풋풋했고, 궁금증과 호기심에 함께 다듬어주고 싶은 사랑스런 존재로 느껴졌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마을신문 편집을 제안받게 되었고 흔쾌히 시작하게 되었다니 참 신기한 인연, 필연(必然)이 아니었을까?

두꺼비마을신문과 두꺼비마을 사람들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임혜선 디자이너는 두꺼비마을신문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알아가게 되었고 운영의 어려운 속사정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직접 공동체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신문을 통해 마을신문의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어느새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함께하는 마음으로 디자이너로서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돕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작년엔 마을신문 기자들과 학교 강단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자교육도 함께 했다. 가까워진 마음만큼 그들 덕분에 용기를 얻었고 처음으로 전공을 살린 거라며 “사람의 힘이 참 큰 것 같아요. 가치로운 일을 하는 그들을 응원하고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났네요.”라고 말했다.

나의 힐링 ‘챔버오케스트라’
미술도 좋아하지만 음악도 좋아한다는 그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 바이올린에 도전했다. 자신을 위한 즐거운 도전이었지만 악기 배우고 연주하기까지 고통도 있었다. 지금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활동하 고 있다. 정기연주회 공연을 위해 예술의전당 무대에 처음 섰던 날의 그 짜릿함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문화생활이 소외된 시골이나 병원을 찾아가는 공연은 연주자가 더 힐링되고 뿌듯함이 있다며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싶단다. 참, 오케스트라 연주 홍보 디자인도 도맡아 하고 있는 임혜선 디자이너는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제가 힐링하는 방법이네요.”라고 말했다.

임혜선 디자이너가 활동하는 청주챔버오케스트라
임혜선 디자이너가 활동하는 청주챔버오케스트라

디자인 가족
부모가 모두 디자이너라 자연스럽게 환경이 만들어져서일까? 자녀들의 관심사가 처음부터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두 자녀 모두 디자인을 전공한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딸은 미디어에 관심이 많고 글쓰기도 좋아하더니 현재 미디어영상을 전공하며 유아교육PD가 되고 싶어한다. 아들도 낙서, 레고 조립, 음악 만들기를 좋아해서 건축학과나 실용음악과를 선택할 줄 알았는데 산업디자인을 전공한단다. 자신이 배우던 시절보다 새롭고 신기한 콘텐츠가 무궁무진해 재미있게 공부하는 두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단다. “저희 가족은 변화하는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해요. 특히 공통된 관심사가 많아 서로에게 배우고 정보도 교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무엇보다 좋아요. 아이들끼리 서로 상의하며 새 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든든하고 감사해요.”

왼쪽부터 남편(김정범 52), 아들(김용민 21), 딸(김다빈 23), 임혜선(50)디자이너
왼쪽부터 남편(김정범 52), 아들(김용민 21), 딸(김다빈 23), 임혜선(50)디자이너

임혜선의 꿈
남편이 베트남 주재원 발령을 받아 다음달에 베트남으로 이사한다는 임혜선 디자이너.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걱정됐지만 준비하다 보니 설레임과 기대가 생겼단다. 큰 꿈을 가지기보단 일상 속에서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다보니 어느새 도전하고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내고 있다는 임혜선 디자이너. 코로나19를 겪으며 그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고 베트남에 가더라도 마을신문과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작업을 할 수 없을 상황이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디자이너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이 감동이었다.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신난다는 그녀는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타인에겐 도움과 힘이 된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기쁘게 함께하고 싶어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편집디자이너’란 활자와 그림을 이용하여 시각적 표현 효과를 높히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칭한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디자이너가 있다. 임혜선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만의 디자이너로서 훌륭한 자질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 길을 찾고, 그 일을 위해 씩씩하게 즐겁게 도전하기. 주변과 어우러져 묵묵히 실천하며 즐길 줄 아는 여유, 또 자신의 성취만큼이나 타인의 행복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공감하는 마음. 또 중요한 한가지! “저는 쉽게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며 누군가 어렵게 할 그 일을 오랫동안 도와주고 함께하는 배려심이 임혜선 디자이너를 더욱 빛나게했다. 임혜선 디자이너의 말처럼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없다면 새로운 방법이 생길 것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영원히 디자이너이길 원하는 임혜선 디자이너를 우리마을인물백과는 ‘평생 디자이너’라고 명명하며 앞으로 펼쳐질 무 궁무진한 디자이너의 삶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이명주 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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