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균 신부

(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나는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지만 여러번 농업을 꿈을 꾸었던 경력이 있다. 가장 먼저 농사와 접했던 것은 나의 어린 시절 우리 가족농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우리 부모님, 삼촌, 고모가 한집에서 사는 대가족이었던 우리집은 농사를 전업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가부장이었던 할아버지께서 농업에 종사하셨다. 지금의 수곡동지역인 ‘남들’과 지금의 석곡동이었던 ‘강서’에 논이 있었고 모충초등학교 옆에 있던 우리 집 주변 화천봉과 매봉뒷편에 몇군데 밭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소에게 풀을 뜯기거나 농사도구를 들어다 주는 정도의 어린 농사보조였지만 당시의 전원적 풍경은 어린시절 행복했던 기억들로 남아있다. 그 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려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실패(?)하고 농촌으로 들어가 농민운동을 하려고 농사를 1년 정도 배웠었다. 그러다가 우연하고 갑작스럽게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평생 성직자로 살게 되었다. 농촌에서 목회를 하는 중에도 늘 농사는 나의 ‘못이룬 꿈’으로 남아 있었지만 한번도 농업을 배우거나 농사를 익히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우리밀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서 우리밀로 빵을 굽는 것을 먼저 배우고 나서 밀농사를 시도해 보았다. 산골에 꽤 넓은 땅에 밀을 심고 수확하는 것은 초보 아니 완전 얼치기 농사꾼에게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지만 4년 동안 밀을 심었다. 그러다 결국 손을 들고 농사를 접었다. 상황이 이런 지경이면 농사로부터 멀어질만한데 올해 또다시 농사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먹물로 살아온 인생이 농업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채 자꾸만 농사에 손을 대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지만 마치 운명처럼 농사일 주변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중이다.

지구의 온실가스배출에서 생각보다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업이다. 인류가 농업을 통해 식량을 해결하기 시작한 것은 약 1만년전인 신석기시대부터였다. 빙하기가 지나고 현재의 기후와 같은 지구의 기온이 형성되면서 지구의 생태환경이 변화되어 인류가 수백만년동안 의존해 오던 수렵과 채취로는 생존이 어렵게 되자 농업을 통해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진입하였다. 이것은 인류의 발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도구를 더욱 발전시키고 협동노동을 통해 공동의 지식을 축적해 나갈 수 있었으며 인구밀도가 높아져서 모여 사는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농업은 산업화가 이룩되기 전까지 자연에 의존하고 자연을 변화시키면서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러나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인구를 모으는 도시는 농업이 아닌 도시 공장노동지역으로 변했다. 그리고 농촌은 이제 인구밀도는 높지 않아도 도시의 노동인구에게 식량을 공급할 정도의 기계식 농업을 통해 자연을 보다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은  토지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 이후의 농업은 토지를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오도록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업화 이전의 농업은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토지에 집적하는 자연농법에 의존하는 것이었는데 산업화 이후 기계적 농업, 식량증대를 가능하게 하는 농업이 되면서 광범위한 토지를 단일작물로 재배하고 비료를 투입하여 쉬지않고 생산하는 농업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도시의 수많은 인구들이 곡물뿐 아니라 고기와 유제품을 먹을 수 있도록 공급하기 위한 축산업도 엄청난 생산력을 높이도록 발전하였다. 이러한 농업은 토지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중으로 날려버리고 공장식 축산을 통해 메탄가스를 대기중에 가득채우는 온실가스 발생의 주범이 되었다.

이제 기후위기시대에 농업의 변화가 필요하다. 농업 자체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농업생산물을 멀리까지 보내는 유통의 최소화를 위하여 도시농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이란 퍼머컬쳐 혹은 생명농업을 통해 토지의 이산화탄소 포집능력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의 농업생산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도 과학자들에 의해 제출되고 있다. 이러한 생명농업(혹은 퍼머컬쳐)을 실험하고 그 꿈을 함께 꾸기 위해 나는 또다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였다. 산남동에서 꾸는 꿈은 구룡산 기슭에 있는 ‘다랭이논(포도밭)’과 두꺼비쉼터 윗부분의 밭을 산남동주민들이 도시 생명농업의 현장으로 바꾸는 꿈이다. 나의 무모한 도전이라 하지만 이것은 아마도 가장 첫번째로 해야하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 다음은 엄청난 변화를 이룩해낼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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