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균 신부

(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김은숙 작가에게

저는 본래 드라마를 좋아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영국이나 미국의 드라마에 빠져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한국드라마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설정의 한계와 지나친 계급적 허구성 같은 것에 염증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드라마가 지금은 전 세계적인 호응을 받으며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듣고 있으며, 특히나 작가님의 ‘더 글로리’는 기존의 방송채널이 아닌 넷플릭스라는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블록버스터 반열에 올라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즌1 총16화를 한번에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즌2를 기다렸다가 그것도 한번에 보았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동은의 차갑고 차분한 복수의 진행과 가해자들의 흔들리는 심정을 대변하듯 속물적이고 불안한 이야기가 균형을 맞추며 여정이 처절한 상처와 복수를 숨긴 채 복선으로 끼어드는 탄탄한 구도를 갖추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동은이에게 불편했습니다. 생존자로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사만큼 그의 무표정한 차분함과 치밀한 복수의 전개에서 빠져있는 그 무언가가 허전하게 했습니다. 저는 가정폭력의 생존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폭력 앞에서 점점 졸아드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허물어진 사람들로서 그 허물어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더욱 힘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의 화려함도 그리고 현재의 돈과 실력도 무너진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런 가정폭력의 피해자들과 다르게 학교폭력 피해자인 동은의 현재는 너무나 강철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무너진 모습은 그의 화상자국 아래 깊숙이 숨겨진채 그는 냉혈한으로 존재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동은에게 가장 가혹하고 결정적인 타격은 그의 엄마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의 모든 복수극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가 더 큰 긴장의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학교폭력의 잔인성과 심각한 문제의식은 아주 잘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생존자의 복수 서사는 더 중요한 생명력을 가진다고 볼 때, 동은의 내적 고뇌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성장의 요소는 완전히 제거되고 오직 하나의 일념만을 위해 살아온 인간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요? 그것은 지금의 폭력적 구조에서 성공신화를 이룩한 사람들, 폭력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는 방식 아닌가요?

제가 왜 이점에 대해서 말씀드리냐 하면 복수라는 주제가 결코 유쾌한 주제는 아니지만 인간에게 복수의 감정은 매우 중요하고 그 복수의 서사는 인간의 내면을 더 많이 탐색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복수 서사의 문학이 그런 점에서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수 서사에서 가해자를 판에 박힌 듯한 이야기로 무너뜨리거나 그저 그가 행한 과거의 행적만큼 혹은 그 이상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면 복수를 통해 드러내는 인간성의 가치가 사라지기 쉬울 것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더 글로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존자이며 피해자인 동은의 고통을 드러내고 결국 영광에 이른다는 전체 구도를 반영한 제목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의 예수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을 받기 전에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가24:26)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의 제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영광이란 고난의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상처 뿐인 영광’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상처가 가져다 준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복수 서사의 클라이막스는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동은이 성취한 영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복수의 성공만이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복수의 끝에서 죽음은 행복’이라는 동은의 말에서 저는 절망했습니다. 그 후 동은이 자살을 유보하는 것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으로 안심한 것은 아닙니다. 복수가 완성되면 더 살 이유가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동은의 이런 대사는 결국 주여정과의 관계가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복수로만 연결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주여정과의 관계에서 복수로 연결될 것이냐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맺을 것이냐라는 폭력적인 모순관계를 설정한 것이 매우 불편합니다. 이 불편함은 바로 동은이 지금 견디어 내는 고통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실패한 것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저는 동은의 고통에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하나의 에너지로 탈바꿈하기를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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