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이웃, 시인 홍산희

시인 홍산희님과 그의 시집 '속솜ㅎ라'
시인 홍산희님과 그의 시집 '속솜ㅎ라'

“좋아하시게 될 거예요!” 그분을 소개한 사람들이 약속한 것처럼 건넨 말이다. 도서관에서 봉사하신다는 말씀에 도서관에서 약속을 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 며 뜨개질을 하고 계신 모습에 ‘평화로움’, ‘따스함’이 떠올랐다. 한 폭 그림 속 단아한 시인의 모습이랄까? 단정한 표지에 솜사탕을 떠올리는 제목과 고운 얼굴 이 반가운 시인과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시인이 되다
“일곱 식구가 함께 살고 있어요. 아들 내외와 손주 세 명, 우리 내외가 함께 살지요. 4남매를 기르고 손주 셋을 돌보느라 가정주부로만 살았어요. 막내아들이 대학 입학했던 1998년부터 시작했던 시 공부. 2022년 등단을 했고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기행에세이집을 냈어요. 아이들 돌보고, 살림하는 일이 전부였던 제 가 마음 안에 소용돌이치는 아픔을 풀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평생교육 문예창작교실을 거쳐 운좋게 함기석 시인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시 공부 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소용돌이치는 마음
“겨우 돌이 막 지났을 때였죠.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만 가지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셨다. 그분의 자랑스런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저에게 무조건 존경의 대상이었죠. 젊은 면장이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북으로 가셨지만 고향을 떠나지 않 고 8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 연좌제로 가족이 고통 받았고 힘들게 살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우리 가족들 에게 늘 따뜻했어요.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늘 의문 이었고 풀리지 않는 숙제였던 것 같아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제주4.3평화공원에서

나를 만났다!
“내 안에 있는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가 늘 숙제였어요. 늘 알맹이가 없는 글처럼 느껴졌지요. 공부를 더 하면 채워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지난해 여름 딸과의 제주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제주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고 나를 풀어내 보았죠. 제주4·3평화공원을 둘러보며 그들의 아픔 속에서 나의 아픔을 마주했어요.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차마 쓸 수 없었던 나와 가족사를 풀어 낼 수 있었어요. ‘속솜ㅎ라’는 ‘조용히 하라’는 제주말이에요. 그 말이 나를 깨웠어요. 제 어머니가 우리 8남매에게, 또 저도 제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세월을 보냈더라고요. 늘 내 생각을 다 꺼내놓지 못하니 사람 들은 물론이고 제 자신도 제 마음을 읽지 못했던 거지요. 시집 ‘속솜ㅎ라’를 쓰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5년, 아니 75년만에 비로소 내 아픔에 내가 가서 닿을 수 있었어요.”

‘속솜ㅎ라’!
‘조용히 하라’는 뜻의 제주 방언인 ‘속솜ㅎ라’는 어 찌 보면 홍산희 시인이 평생을 함께한 말이자 또 시인을 이해하는 열쇳말이었다. <속솜ㅎ라> 전문을 인용 해 본다.

4·3평화공원 전시관이다. 나와 딸과 딸의 딸 3대가 걸음을 멈추었다. ‘정명正名을 기다리며’ 비문을 새기지 못한 백비 앞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작가 인 딸이, 열네 살 딸의 손을 잡고, 1947년 4·3의 도화 선으로 흔들리는 섬에 서 있다.

나의 몸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이 소용돌이친다. 그 늪에서 나를 옥죄고 있는 괴물이 눈을 뜬다. 나 아직 철들기 전 아이 적, 아니 내가 걸음마도 배우기 전, 아니, 아니, 나 태내적보다 훨씬 전부터였을. 나는 1948년생이니

이 땅은 하나의 독립된 국가이노라, 젊은이들을 깨 웠다는 나의 아버지, 누가 우리를 갈라놓았는가, 연좌제는 저승사자다. 낙인찍힌 자식들 끌어안고, 죽을 수 도 없는 내 어머니의 늪

캄캄한 돔 안이 텅텅 울린다. 죽은 우리가 우리를 향 해, 유리 무덤 속 텅 빈 눈빛들이, 살아있어도 죽은 우리의 소리 없는 비명이, 이름도 얻지 못한 아가들 웃 음, 울음소리가. 나는 그만 밖으로 나와 정원에 주저 앉아 토한다. 울컥울컥 솟구치는 늪

1948년생 엄마의 등을 쓰다듬는 1974년생 딸아, 2007년생 딸의 딸아, 그리고 눈밭에서 선혈을 뚝뚝 흘리는 동백아, 어찌 알겠니!

웃음다운 웃음 한 번, 울음다운 울 음 한 번, 소리다운 소리 한 번, 밖으로 터뜨리지 못한,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이 통곡을 동백아, 동백아
— 홍산희 시집 『속솜ㅎ라』(현대시학시인선, 2022)에서

시집 ‘속솜ㅎ라’의 출간은 남편의 응원과 격려가 큰 몫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이제 세상 밖으로 다 내어 놓았으니 행복한 시를 써 보라고 하네요. 밝고 행복한 시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라고요.”

마을로 성큼!
이제 시인은 마을로 나왔다. 작은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이웃들과 독서 모임도 한다. 시인은 말한다. “나 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도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 으로 도서관에 제 책을 기증하고 싶었어요.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손을 내밀어 주시고 반겨주셨어요. 내가 몰랐던 따뜻한 이웃을 만났어요.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용기내어 ‘시인과의 만남’도 가졌고 독서 모임도 하게 되었어요. 어릴적 늘 따스했던 고향이 느껴졌어요. 설레이는 마음으로 마을과 친구가 되려고 합니다. 이제는 너무 깊은 마음보다는 넓은 마음으로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고 싶어요.”

시인 홍산희, 다정한 이웃!
우리마을인물백과는 홍산희 시인을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함께하는 친구 같은 다정한 이웃이라 말하고 싶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책 속 주인공 ‘야 난’의 용기와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닮고 싶었다 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 했던 가족의 수난을 용기 내어 시로 들려준 시인. 시로써 억눌린 자아를 치유하고, 시를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함께하려는 시인과 만나 참으로 행복했다. 홍산희 시인은 시집 『속솜ㅎ라』의 첫 페이지 시인 의 말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를 덮는/ 하얀 무덤/ 백 년이면 녹을까요?” 그 ‘하얀 무덤’을 마을에서 함께 녹여보길 희망해 본다. 

마을도서관에서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을도서관에서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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