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과 3일에 두꺼비생명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산남동 두꺼비생태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된 이번 축제는 올해로 17회째를 맞아 마을의 여러 공동체들이 참여하여 생태와 환경을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300년 이상이 된 원흥이 느티나무를 시민 보호수 1호로 지정하기 위한 선포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체험 부스들이 마련되었다. 코로나로 3년 만에 열린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마다 텀블러와 장바구니 등을 가지고 나와 커피와 친환경 빵, 도시락은 물론 다양한 부스 체험을 통해 축제를 즐겼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환경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일임을 느낀 축제의 현장이었다.

영화 ‘니얼굴’ 배우 정은혜씨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무대 왼쪽부터 장차현실 배우, 서동일 감독, 정은혜 배우, 이수복 사회자, 김석규 사회복지사
영화 ‘니얼굴’ 배우 정은혜씨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무대 왼쪽부터 장차현실 배우, 서동일 감독, 정은혜 배우, 이수복 사회자, 김석규 사회복지사

 

축제의 하이라이트 개막공연
2일 저녁 개막공연이 시작되었다. 두꺼비앙상블 공연을 시작으로 혜원장애인복지관의 댄스와 난타공연으로 개막식을 열었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니얼굴]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두꺼비생태공원 야외공연장에 100여 명의 주민들이 함께 함께 모여 영화를 감상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살아가는 정은혜 배우와 그 가족의 모습을 보며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개막식에 특별히 장애인 당사자이며 ‘인권연대 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구원 활동가와,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오랫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김석규 씨를 초대했다.

 

영화 ‘니얼굴’(2022) 관객과의 대화
서동일 : 영화감독. 정은혜 씨 아빠
장차현실 : 만화작가. [니얼굴] 영화 피디.
부모운동 양평지회장. 정은혜 씨 엄마
정은혜 : 캐리커처 작가. 배우.

 

사회자가 멀리서 오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정은혜 배우가 “열심히 잤죠”라고 답한다. 관객들은 그녀의 유머에 환호를 보냈다.
정은혜 : 이 영화는 제가 문호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를 사계절 동안 그리는 모습을 담은 영화입니다.
사회자 : ‘니얼굴’에서 보는 은혜 씨는 멋진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정은혜 : (망설임 없이) 네!!

 

은혜 씨를 응원하기 위해 든 카메라
감독 : 은혜 씨가 지금 이렇게 예뻐 보이지만 불과 6년 전만 해도 이 천덕꾸러기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 하나 고민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맡길 데가 있고 달라지겠지, 바뀌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지만, 막상 성인이 되자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친구도 없어 25,6살 은혜 씨는 방구석에서 창문을 닫고 뜨개질만 했어요. 밖에 한번 나갔다 오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불편한 시선들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그걸 풀 방법이 없어 상상의 친구들을 불러내서 소리 지르고 싸우고 울고 불고... 꼭 새벽에 그래서 잠을 잘 수가 없었죠. 암담하고 절망적이었고 그러면서 가정의 분위기도 우울감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 부부가 마신 소주병이 한 달에 몇 박스씩은 됐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은혜 씨가 그려낸 그림 한 장에서 장애 속에 가려진 은혜 씨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사회적 관계가 생기고 자아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비로소 은혜 씨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어요. 은혜 씨를 지켜보면서 기존에 없던 매혹적인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년 동안 촬영한 영화 개봉을 앞두고 노희경 작가님이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제안해 왔어요. 드라마 설정이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야 해서 드라마 종영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해 개봉했습니다. 드라마의 여파가 상상 이상으로 파도처럼 밀려와 여러분들과 화끈한 만남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웃음)

 

은혜 씨가 처한 현실
90년생 은혜 씨는 장애 복지와 교육정책의 전환기를 겪는 시기에 학령기가 되었다. 양평엔 복지관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학교에 특수교사가 없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을 거절당했다. 2006년부터 장차현실 씨는 부모들과 함께 투쟁을 하고 삭발과 단식을 했다. 2008년 특수교육법이 제정되고 정은혜 씨는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더 작은 학교로 옮겨 다니다가 홈스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은혜 작가는 무학력입니다”
장차현실 : 은혜가 20세 될 때까지 특수치료비, 학교 비용 등을 따져보면 거의 집 한 채 값이에요. 그런 장애인 가정이 많죠. 아이가 어릴 때 특수교육에 많은 비용을 쏟아부어요. 계속 장애를 거부하고 장애를 넘어서기 위한 치료에 다 쏟아붓죠. 그러다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절망합니다.) 조현병 증상이 심해지고 방 안에서 나오지 않던 어느 날 은혜의 이상한 눈빛을 봤어요. ‘은혜야 뭐해?’하고 문을 열었는데 은혜가 다른 세상에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은혜가 아무 말 없이 저를 쳐다보지만 ‘나 스물세 살 인생 견디고 사느라고 애썼어. 여기서 그만해도 되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 슬펐어요. 한 사람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한 삭발투혼
장차현실 : 은혜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삶이 바닥을 치는 느낌이었고 결국 뇌졸중이 왔어요. 그래서 동사무소에 가서 내 몸이 이런데 딸을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지원금이 한달에 4만원이라고... 장애 3급인 정은혜씨가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4만원인 거예요. 그건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요. 이 사람의 삶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속상하고 화나고... 사회 구조가 우리를 가두고 있는 걸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양평에 부모운동단체를 만들어 투쟁을 시작했고 삭발을 했습니다.

 

장애인도 노동자이고 일하고 싶다
장차현실 : 2018년은 은혜가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그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술활동과 접목했죠. 장애를 부모들에게 책임 지울 게 아니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보조금 사업 등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나와서 같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갔어요. 여러 활동 중에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많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나는 노동자이다. 일하고 싶다”라고 플래카드를 써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위합니다.
이렇게 정은혜 씨의 엄마 장차현실 씨는 밖으로 못 나오는 장애인들에게 세상을 향한 문을 열어주기 위해 힘겹게 투쟁하고 있었다.

 

김석규 씨 이야기
김석규 :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숨거나 도망가게 되는 건 사회적 인식 때문입니다.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해요.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다니다 보면 일반인은 물론 교육계에서도 장애인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일례로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이라 불러야 하는 것과 같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드라마 ‘우리들의블루스’에서 선장이 정은혜 작가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옥이 ‘선장도 똑같구나’ 하고 실망하죠. 그러자 선장은 나는 어디에서도 다운증후군을 만난 적이 없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바로 그런 부분이 개선되어야 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사회로 나올 수 있어요.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스무 살이 되면 갈 데가 없어지는 현실에서 취업을 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까지는 정말 힘듭니다. 장애인식개선과 취업이 장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구원 씨 이야기

이구원 : 저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으로서 저상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활동을 합니다. 대중교통이라고 하지만 탈 수 없는 차들이 너무나 많아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사람들과 같이 다니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집회 현장에도 참여하고 장애인권에도 관심이 많아 인권교육을 (하러) 다닙니다. 그래야 제 삶이 편해질 것 같아서... (웃음)
이구원 씨는 정은혜 씨가 얼굴을 그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정은혜 : 사람들은 다 다르잖아요. 다르게 생겼으니까...

 

은혜 씨의 독립생활과 끝나지 않는 투쟁
정은혜 씨는 독립해서 따로 산다고 한다. 할머니랑 같이 산다. 장애인 장기 임대주택에서 사는데 아침에 장애 보조 선생님이 오셔서 9시에 출근, 1시까지 예술 노동을 한다고 한다. 오후에 주간 활동 선생님들이 케어하고, 6시에 퇴근하면 활동보조 선생님이 4시간 동안 저녁을 챙겨준다.
장차현실 : 일을 끝내고 저녁에 가보면 모든 일과가 끝나 있어요. 아마 24시간 돌봄 서비스가 된다면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아이와 같이 죽거나 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호주에 사는 발달장애 형을 둔 동생은 장애 형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엄마 사후에 형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지, 부담은 되지 않는지 묻자 “무슨 걱정이야, 나라에서 알아서 해주는데”라고 답합니다. 이것을 이뤄가기 위해 투쟁합니다.
장차현실 씨는 자식을 두고 먼저 죽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했다.

 


감독의 응원
감독 : 제가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는 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제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응원이 되는 일. 물론 부모의 희생과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자기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은혜 씨가 리버마켓의 허허벌판에서 더위와 추위,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디며 아침부터 밤까지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의지를 보여주어 부모로서 감동했습니다. 그런 은혜 씨의 삶의 의지, 태도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정은혜 :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잖아요.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거나 눈이 펑펑 오는 날엔 손님이 없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막걸리 한잔 마시면서 즐기죠. (웃음)
사회자는 오늘 은혜 씨에게 보내준 사람들의 박수가 여러분과 은혜씨와의 약속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은혜 씨에게 손 내밀어 주고 조금 불편해도 손잡아 주자는 말로 관객과의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이날 은혜 씨는 나훈아의 ‘사랑’을 불렀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정은혜씨가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여 한지민 배우와 촬영하고 있다. [사진=tvN]
정은혜씨가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여 한지민 배우와 촬영하고 있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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