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친구들 최지수 청년 활동가가 12월 1일부터 8일까지 라오스로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8일 간의 생생한 연수 소감을 싣는다. /편집자주

1일차 - 비엔티엔

라오스 국화인 첨파꽃
라오스 국화인 첨파꽃

라오스 공항에 도착했다. 6시간 비행으로 많이들 힘들었다. 공항을 빠르게 나가고 싶었지만 매우 느린 수속 절차로 인해 더 지쳤었다. 공항에 나가서 택시를 잡던 도중 양국장님이 라오스 국화인 참파꽃을 보여주었다. 하얀 5개 잎으로 이루어졌고 향이 좋았는데, 여행 내내 마그넷이나 간판, 머리핀 등 곳곳에서 눈에 띄는 것을 보며 라오스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일차 – 비엔티엔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기 전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낯선 풍경과 낯선 냄새들이었지만 거리가 참 깨끗했던 기억이 난다. 나갈 채비를 하고 환전을 한 뒤, 거리를 걸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오토바이가 많았고, 거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어려 보이는 학생들도 오토바이를 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라오스는 사원이 굉장히 많은데 그중 한곳에 들어갔다. 무릎 위로 다리를 내놓으면 안되기 때문에 옆에 있던 치마를 두르고 들어갔다. 돌상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관리가 안 되어 녹이 슨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 나라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 있는 라오스 대표 커피와 죽통밥(Khao Lame)을 사서 먹었다. 커피는 아이스아메리카노에 연유를 탄 맛이고, 밥은 대나무 안에 밥과 연유를 넣고 찐 그런 맛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지만 달콤하면서 맛있었다. 마지막날 비엔티엔으로 다시 가게 되면서 또 한번 먹고 싶었는데 못 먹게 되어 아쉽다.

라오스 야시장
라오스 야시장

밤에는 야시장을 걸어 다녔다. 낮에는 횡하던 거리가 음식과 사람들로 북적대고 수많은 오토바이, 툭툭이들이 정말 진풍경이었다. 이때가 제일 인상에 남는데 그 이유는 가장 라오스다운 분위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3일차 – 비엔티엔 → 루앙프라방
호텔에서 나와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를 타는 내내 풍경을 구경했는데 나무와 숲이 굉장히 우람했고 동물들이 많이 보였다. 비엔티엔과 루앙프라방 같은 관광지와는 다르게 기차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건물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산과 밭, 나무, 말, 소 그리고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기차역에 내려 화장실을 가려고 찾았는데 문이 막혀있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화장실만 쓰겠다고 하였는데도 거부당했고, 그냥 포기하고 참고 호텔로 가야겠다고 나왔는데 멀리서 간이화장실이 보였다. 볼일을 보고 나왔는데 앞에 있던 관리자가 돈을 요구했다. 한국돈으로 300원 정도? 이제야 왜 화장실을 막아놓았는지 알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놓고 박물관에 갔는데 전통 옷과 악기들을 볼 수 있었다. 전통의상은 처음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패턴이나 색감 등이 규칙적이었고 공예품으로서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박물관에 친절한 라오스인 안내인과 그 옆에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강아지가 있었는데 이름이 Panda였다. 안내인이 맘에 들면 데려가라고 하였는데, 지금도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데려올 걸 그랬다! ㅎㅎㅎ

저녁에는 야시장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각자 사서 모였는데 냄새며 맛이며 나와는 맞지 않았다. 체한 것인지 속도 더부룩하고 음식이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야시장을 구경하던 중 한국음식을 파는 부스가 있어서 김치면 하나를 먹었더니 신기하게도 속이 편해졌다. 나는 천상 한국인인가보다!

루앙프라방 거리
루앙프라방 거리

 

4일차 – 루앙프라방
오전에는 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섬으로 갔다. 그곳에는 배를 만들고 있는 장인이 계셨고 바나나를 구워 드시는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구운 바나나는 처음 먹어보았는데 고구마 맛이 났다. 걷다가 학교 구경도 하고 상점이 있어 앞에서 쉬고 있었는데, 상점 주인이 말을 걸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아기 사진을 보여주길래 자녀분이시냐고 물었더니 손자라고 하였다. 그러다 아기 아빠를 보았는데 너무나도 어린 친구여서 놀랬었다. 라오스에는 어린 부모가 많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그들의 풍습탓일까? 성교육이나 피임 교육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때문일까? 라오스는 안타깝게도 의료시설도 잘 구비되어 있지 않아서 유아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라오스 시장이나 식당 등에서는 일하는 부모 옆에 아이들이 울거나 놀거나 또는 사장님이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맡길 보육시설이 없기 때문에 일하는 부모님 옆에서 그냥 앉아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유치원부터 교육을 시작하는데 라오스 아이들은 한참 배울 시기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7일차 – 비엔티엔
2일차에 공휴일이라 못 갔던 COPE 재활치료센터에 갔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베트남 주변 국가들이 베트남을 돕지 못하게 하기 위해 9년 동안 24시간 내내 8분에 하나씩 폭탄을 떨어트렸다고 한다. 그 피해를 당한 희생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재활병원이 COPE재활치료센터이다.

비엔티엔의 재활병원
비엔티엔의 재활병원
비엔티엔의 재활병원 희생자들의 목발
비엔티엔의 재활병원 희생자들의 목발

 

옆에서 계속 설명해주셔도 와닿지 않았던 것이 희생자들의 목발, 오렌지만한 폭발물, 희생자들의 사진까지 직접 눈으로 보니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언제 다리와 팔이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일상생활은 불구하고 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 같다. 마지막 날 COPE을 다녀옴으로써 공정여행의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있던 것 같다.

라오스인은 전반적으로 느낌이 순했다. 물론 우리가 관광객이어서 상업적으로 그랬을지는 몰라도 화내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식당이나 기차역이나 어딜 가든지 눈이 마주치면 나에게 웃어주곤 했다. 너무나도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나에게는 성취보다는 경험이, 경험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한데 이 해외연수를 통하여서 다시 한 번 내 인생에는 아직 경험해야 할 것이 많고 그것이 참 설렌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로서 일을 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많이 하였다. 그럴 때 마다 항상 배우고 마음이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라오스로 출국 전날, 1층 카페에 모여 잘 다녀오라며 응원해주시고 웃음을 지어주셨던 공동체 분들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하하! 항상 마음으로 감동을 주시고, 움직이시는 우리 두꺼비친구들 대표님, 처장님께 이러한 경험과 기회를 주신 것에 큰 감사를 드린다.

최지수 활동가(두꺼비친구들)
최지수 활동가(두꺼비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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