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갱년기 딸의 제주도 여행기

방주교회 앞에서 엄마
방주교회 앞에서 엄마

일흔일곱 살, 우리 엄마는 치매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1년 후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 사남매는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치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우리 가족에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난 엄마의 기억을 어떻게 하면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는 소용없는 방법을 찾느라 애만 태웠다. 갈피를 못잡고 헤매면서 우리는 치매 정보를 카톡으로 활발하게 공유했고 책을 주문하며 치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절망을 견뎠다. 순식간에 엄마의 자식에서 보호자가 된 우리는 더 돈독해졌다. 하지만 엄마는 불쑥불쑥 낯선 엄마로 변했고 우리는 그런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고 서툴렀으며 치미는 화를 참아야 했다. 엄마와 자식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정신적 엄마를 잃었다.

그런 엄마를 모시고 5월 연휴에 용감하게도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엄마의 자매들, 즉 이모들까지 모시고 떠난 여행이었다. 나를 포함해 남동생과 사촌오빠가 서포터로 동행했지만 80세, 77세, 68세 이모들과 2박 3일간의 제주도라니…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큰 이모는 허리가 기역자로 굽었고 울 엄마는 치매고 막내 이모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다. 애초부터 이 여행이 가능하긴 한 걸까?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잠이 안 왔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엄만 청주공항에서 제주도로 가는 동안 내내 비행기 창밖을 보며 신기해하셨다. ‘이 큰 비행기가 어떻 게 뜨는 거냐? 저 밑에 집들이 쪼끄매진 거 봐~ 하하하 너무 웃기다.’ 무서워할까 봐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알기론 엄만 제주도를 스무 번도 넘게 다녀왔지만 지워진 엄마의 기억 속엔 비행기도 제주도도 처음이다. 그렇게 아이처럼 설레며 제주도에 도착해 이모들과 조우했다. 엄마는 이모들을 보자마자 말했다. ‘많이 뵀는데 누구시냐’고… 큰 이모는 속상하신지 그것도 모르냐고 버럭 하신다. 막내 이모가 엄마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휴~ 막내 이모가 계셔서 다행이다.’ 엄마의 머리에선 기억 속 어린 자매 들과 현재 인물이 드디어 연결된다.

 

엄마, 큰이모, 막내이모. 숙소 토브하우스에서
엄마, 큰이모, 막내이모. 숙소 토브하우스에서

 

숙소에 도착해 엄마의 세 자매는 어릴 적 이야기를 정겹게 나눈다. 물론 우리 엄마는 큰 이모에게 아직도 베를 잘 짜냐고 물어 황당해하시지만 대화는 무르익어 간다. 부여에서 함께 태어나 각기 다른 고장에서 살아가는 세 자매의 첫 제주여행의 밤이 그렇게 깊어 갔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는 둘째 날. 전복죽으로 속을 달래고 여행길에 나선다. 성산일출봉을 시작으로 제주도를 왜구로부터 지키는 장소였다는 별방진, 녹차 카페, 내가 사랑하는 김영갑갤러리,(이모들이 싫어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굉장히 좋아하셨다) 제주도 돔베고기가 올라간 고기국수로 점심을 먹고 섭지코지, 해녀박물관을 돌고 나서 저녁으로 회를 먹었다. 여기 모인 인물들 중 젊은 축에 속하는 나는 그만 점심 식당에서 뻗고 말았다. 하늘이 빙빙 돌았다. 놀랍게도 선천적으로 체력이 제일 약하신 막내 이모는 펄펄 날았다. 체력이 약해서 매일 운동과 영양제를 챙기신다더니 관리의 효과가 빛을 발했다. 제일 걱정했던 우리 엄마는 수학여행을 온 듯 여행 내내 까르륵 웃으시며 신이 났다. 합이 225세인 이모와 엄마가 끄떡없는 걸 보면서, 갱년기가 한창이라 몸도 마음도 처져 있던 내가 꽤 민망했다. 그렇게 이모들과 엄마의 체력에 놀라며, 우려했던 돌발상황 없이 둘째 날 여행도 무사히 마무리됐다.

여행 전, 엄마가 청주에 내려오신 날부터 4일 내내 난 잠을 매일 두 시간도 못 잤다. 엄마는 치매 이후 본인 집이 아니면 깊이 못 주무신다. 낯선 곳이라 긴장 하시는지 밤새 화장실을 찾으시고 본인 침대를 찾지 못해 온 집안의 문을 다 열어 보신다. 그러다가 혹여나 대문을 열고 나가실까 봐 엄마 옆에서 선잠을 자며 엄마를 지킨다. 그렇게 삼일이 지난 여행 마지막 날, 내 체력은 바닥나 버렸다. 잠을 못 자서 생긴 편두통 때문에 약을 먹고 남동생이 챙겨주는 발포비타민을 기운 없는 몸에 흘려 넣었다. 손편지와 함께 미리 준비해준 정성스러운 여동생의 간식 꾸러미 속에서 비타민 젤리를 찾아 먹으며 흐물흐물해지려는 정신을 다잡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렇게 시작하는 여행 마지막 날, 숙소가 있는 구좌읍에서 서귀포로 향했다. 기독교인인 이모들을 위해 방주교회를 둘러보고, 유명하다는 제주도 흑돼지구이를 먹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장소, 카멜리아 힐을 향했다. 나를 포함해 이모들은 나이가 들수록 꽃이 좋아진다고 했다. 젊을 때는 좋은지 모르다가 중년이 넘어가면 신기하게도 다들 꽃을 좋아하게 된다. 마음을 사로잡는 향기 때문인지, 시선을 압도하는 화려한 색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활짝 피었다가 사라진 청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갱년기 딸과 노년의 엄마, 이모들은 꽃에 마음을 온통 빼앗긴다. 소녀처럼 탄성을 지르는 엄마와 미소가 가득한 이모들. 제주도를 신혼여행 이후 40년 만에 와본다는 막내 이모는 20대로 돌아간 듯 날아다녔다. 엄마와 이모들 표정이 수국 꽃처럼 활짝 피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불면에 시달린 후유증으로 3일 동안 두통약을 먹었고, 하루 동안 죽은 듯이 잠을 잤으며, 무거워진 몸을 되돌리기 위해 고함량 비타민B 와 C를 열심히 복용했다. 그러고 나서 효도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기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 “엄마~ 제주도 여행 너무 좋았지?”

엄마 : “응 아들하고 둘이서 다녀왔는데,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

딸 : “아...... 아들이랑 둘이 다녀왔구나...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데?”

엄마 : “어 그냥 좋았어. 우리 아들이 최고야!”

방주교회에서 남동생과 엄마 나
방주교회에서 남동생과 엄마 나

엄마는 딸과 이모들과 함께 있었던 사실을 전혀 기억 못 했다. 물론 뭘 했는지도 전혀 모르신다. 예전의 나였다면 섭섭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치매를 이해하기에 이내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번 여행으로 엄마의 마음속에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한 겹 쌓였다면 그걸로 됐다. 엄마와 즐거웠던 기억은 내가 하면 되니까……

 

                                                                                                            / 도도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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