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아롱 변호사(변호사박아롱 법률사무소)
박아롱 변호사(변호사박아롱 법률사무소)

오랜만에 두꺼비마을 가족분들께 인사드린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이런저런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꿋꿋하게 한발 한발 내딛는 산남동 주민분들을 보면서 저도 많은 힘을 얻었다. 올해 안에는 마스크를 벗고 웃는 얼굴로 여럿이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동안 저는 감사하게도 큰 부침 없이 이곳 산남동에서 사무실을 꾸리며 지내왔다. 얼마전에 상당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최근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비록 이곳 산남동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언제든 내가,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같은 청주시민으로서 그곳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아 주시기를 간청 드리는 다소 염치없는 심정에서도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곳은 ○○지구라는 명칭에서 보듯 작은 택지지구 로 현재 3개의 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리고 인근 대규모 택지지구의 3생활지구 아파트 단지 중 이미 입주한 단지가 1개, 내년에 입주 예정인 단지 1개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 이렇게 2개 지구 5개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는 준주거지역, 즉 상가 밀집 지역 한복판에 건축 중인 6층 건물이 알고 보니 정신병원으로 사용될 건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명감 있는 인근 주민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 병원은 알코올중독전문병원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정신병원이라고 해도 건축허가를 받았다고 하니 문제가 없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의 위치를 알고 나니 신경이 쓰였다. 그곳 바로 옆 건물에 내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있고, 바로 옆, 대각선 앞, 뒤 건물 각 1층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이 있고, 대각선 뒤 건물에는 다른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이 있고, 바로 뒤 건물에는 내 아이와 인근 소아·청소년들이 다니는 소아과병원(현재 호흡기전담클리닉으로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들도 이곳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약 처방을 받고 있다), 나와 남편이 다니는 내과, 여성병원, 약국 등이 있다. 그리고 그 건물들이 있는 블록에서 1차선 도로를 건너면 어린이놀이터가 있다. 그곳에 그렇게 학원과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많은 이유는 초등학교에서 가깝기 때문인데, 인근 초등학교에서 정신병원 부지까지의 거리가 270m가 채 되지 않는다(참고로 샛별초등학교에서 31가지 아이스크림 가게까지의 거리가 약 360m이다).

청주시는 건축법상 허가를 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하고, 교육청 또한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상 상대적 보호구역은 학교로부터 직선거리 200m 이내 인데, 이 경우 약 270m이므로 보호구역 밖이란다. 말은 맞다. 그런데 주민들의 실질적인 생활권과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은 어떻게 하는가? 공익과 사익을 비교 형량하여 공익이 사익보다 훨씬 클 때는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할 수도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인데, 청주시는 이처럼 당혹스러운 위치에 정신병원 건축허가를 내주면서 그 옆, 앞뒤 건물에 뭐가 있고, 평소에 누가 오가는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일까(물 론 청주시는 건축허가 당시 ‘정신’병원인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쯤 되니 신경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나기 시작해서 더 찾아보았다. 알코올중독전문병원이 되려면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전국에 10개도 되지 않아서, 정말로 그곳에 병원이 들어온다면 전국에서 중증 알코올중독환자를 받게 될 것이 자명하며, 알코올중독전문병원 홈페이지와 알코올중독 치료 관련 연구자료에 의하면 알코올중독은 마치 정신과 폐쇄병동처럼 초기에 감금에 가깝게 자유를 제약하는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폐쇄병동은 아니라서 탈출환자도 발생하고,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입원환자에게 자유가 주어져서, 인근 주민의 피해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고도 한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청주시와 건축주는 ‘외래 진료 를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주장을 했는데, 이것은 건축주 법인의 대표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병원 홈페이지 안내만 보더라도 바로 반박이 된다. 그리고 알코올중독전문병원으로 인증 받으려면 ① 연간 입원환자 중 66% 이상이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환자여야 하고, ②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연간 입원환자 수가 전체 병원급 의료기관 중 상위 30% 이내에 속해야 한다고 하는데, ‘알코올중독전문정신병원을 외래진료형으로 운영하겠다’는 청주시와 건축주의 말을 주민 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현재 공사는 차근차근 진행되어 골조가 올라가고 있고, 주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집회와 소송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모금도 하고, 집회도 하고, 언론에도 제보하고 바삐 움직이는 이웃들을 보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내가 할 수 있 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산남동 마을 주민들에게도 지금 청주시 다른 마을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고자 결심하게 되었다.

건축법이 정한 형식적 요건에 맞지 않는 부분은 없을 수 있으나, 공익상 필요가 인정될 경우 허가권자는 건축허가를 반려할 수 있다. 인천 서구 검단지구에서는 서구청장이 주민의 공익을 이유로 이미 건축이 다 된 정신병원의 의료기관개설을 불허했고, 행정심판에서도 정신병원 측의 불복신청이 기각되어 결국 정신병원 개설이 불발되었다. 최근 대전 가수원동 장례식장 사건의 경우에도 구청장이 주민 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하자 건축주가 이에 불복하였으나, 대법원이 ‘인근 주민들에게 쾌적하고 평온한 주거 및 생활 및 교육환경 등에 침해된다’고 하여 주민의 공익에 손을 들어주었다. 늦게나마 청주시가 건축주 개인의 사익보다 시민의 공익을 살펴 적극 행정을 펼쳐주기를 바라고,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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