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화(55세, 산남대원칸타빌1차)  전)산남동 새마을부녀회장(10년 활동)                                                  현)산남대원1차아파트부녀회장 농협주부대학 11기 총무                                                                               손자(임성빈)와 찍은 돌사진
                                     최연화(55세, 산남대원칸타빌1차)  전)산남동 새마을부녀회장(10년 활동)                                                  현)산남대원1차아파트부녀회장 농협주부대학 11기 총무                                                                               손자(임성빈)와 찍은 돌사진

 

우리 동네는 다른 동네에 비해 유난히 공동체가 많은 동네다. 그런 연유로 옆 마을을 가도 뒷 마을을 가도 다들 우리 동네가 부럽다고 말한다. 이기심을 내려놓고 남을 위해주고 마을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마을에 공동체만 20여 개가 훌쩍 넘지만 그중에서도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공동체에서 10년을 한결같이 봉사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동료 기자님의 제보를 듣고 함께 만나 보았다. 어떤 특별한 분이실지 궁금 했다.


‘복이 많은 그녀’
약속한 카페 문을 들어서는 최연화 회장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가득해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분이었다.
“남들이 제게 복이 많다고 해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거든요. 봉사 일은 부담은 되지만 함께 하는게 힘이 되어 계속 해 나가는 것 같아요. 그게 제 봉사의 원동력입니다.”
최연화 회장이 봉사 일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 크고 결혼도 해서 여유가 생긴데다가 보람된 일을 찾고 싶어 시작한 일이 새마을부녀회 봉사 일이다.
“뒤에서 도움 주는 걸 좋아하는데 일을 하다 보니까 직책이 맡겨졌어요. 제겐 신랑 뒷바라지가 우선이어서 못한다고 거절했지만 나중엔 신랑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장직을 맡게 되었죠. 집안 살림도 봉사일도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갔어요.” 최 회장은 아무리 좋은 봉사일이라도 모두가 함께 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없을 거라며 ‘사람이 복’이라고 했다.


어릴 적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진 봉사
“어릴 때 새마을운동이라는 게 있었어요. 마을을 함께 청소하고 신작로도 내고 하는 운동이었죠. 아침에 새마 을운동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잖아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하는 노래가 들리면 아침 일찍 어른들이 다 같이 나와서 마을을 청소하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좋아서 뛰어다녔던 생각이 나요.” 모두가 나와서 청소를 했기에 빗자루가 각 집마다 넉넉하게 있었고, 일요일 날 빗자루를 들고 학교로 나와 한바탕 마을을 쓸고 나면 마당에 선명하게 남는 빗자루 결이 좋았다고 말하는 최연화 회장. 어릴 적 새마을 운동이 그녀의 마음속에 봉사의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고 한다.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십리 길이 넘었어요. 학교가 너무 멀다 보니 하교 길에 힘들고 배가 고프니까 간식으로 먹으려고 겨울이면 고구마를 눈 속에 감춰 놓고 학교를 가죠. 어느 때는 고구마가 반이 없어졌는데 알고 보니 쥐가 먹었더라고요” 몰래 감추어둔 고구마를 뺏겨 억울했을 어린 최연화 회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픈 동물에게 그녀가 감춰둔 고구마는 가뭄에 단비 같은 식량이었으리라. 예전 우리는 이렇게 이웃끼리도 동물에게도 참으로 인정 넘치는 모습 이었다.


‘그때는 모두가, 지금은 일부가’
“옛날에는 네 일, 내 일이 없었어요. 시대가 어려웠어도 바쁜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집 가서 다도와주고 그랬어요. 옛날에는 공동체 하면 모두가 함께 했는데 지금의 공동체는 일부가 하는 것 같아요. 나만 바쁘다고 생각을 하고 시간이 있어도 남의 일에 신경을안 쓰니 그건 안타까워요. 내가 나서기 보다는 남이 하겠지 하는 마음이 아쉬워요.”


우리 동네 유일한 부녀회
그녀가 회장을 맡고 있는 대원1차 부녀회는 산남동에서 유일하게 남은 부녀회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봉사 하는 일이 너무 많다. 관리소와 함께 대청소도 함께 하고 도서관 봉사와 보름날 행사, 여름에는 삼계탕봉사, 추석때는 송편행사, 김장봉사, 꽃심기, 잡초제거, 환경 정화... 나 살기 바쁜 때에 이런 일들을 하는 부녀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보름날에 음식을 만들어서 경로당 어르신과 관리소 직원들께 드려요. 한 해를 시작하며 인사하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대접하는 거죠. 삼계탕, 송편, 김장 같은 행사가 그래요. 추석에 송편 행사로 송편을 해서 수고하시는 관리소 직원들께 드리니, 떡을 받은 직원의 부인이 ‘당신 거기 다니기 참 잘했어. 앞으로도 오래오래 다녀. 떡 너무 맛있었어.’라고 했단다. 주민과 직원 모두 서로에게 감사해 하고 아껴주는 아파트 분위기가 느껴졌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행사가 어렵지만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내년부터는 다시 할 수 있을것 같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봉사하면서 제일 좋은 거, 같이 어울리는 거
”봉사할 때는 힘들어도 뭔가를 바꿔놓거나 꾸며 놓으면 다닐 때마다 뿌듯해요. 한번은 구룡산 산책로에 펜스가 노후화 돼서 부녀회에서 다 세우고 정비해 놓으니 너무 좋더라구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함께 고생해서 해놓은 거니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누구 하나 확진자가 나타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예전만큼 만나지 못한다며 함께 봉사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했다.

 

”5월 초순경에 농협주부대학에서 마늘을 캐러 갔었어요. 마늘을 캘 인력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해서 괴산 금왕으로 갔지요. 장소가 멀다 보니 아침 일찍 7시에 만나 차로 한 시간을 갔어요. 가보니 외국인 노동자분들 세분만 계시더라구요. 마늘은 진짜 크고 잘 돼서 다행이 었는데 날씨가 얼마나 덥고 고된지... 네 시간을 캐는데 나이들이 있어서 다리가 아파 털푸덕 앉아서 하는 사람, 허리가 아픈 사람, 무릎이 아픈 저는 엉덩이를 들고 하다 보니 많이 힘들었죠. 더위 먹을 찰나에 아이스크림을 주셔서 더위를 달래가며 마늘 캐던 기억이 나요.“ 건강한 사람조차 힘든 마늘캐기를 젊지 않은 나이에 내 일처럼 달려가 봉사를 한다는 것, 최회장의 말대로 함께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연화 회장은 가족들에게 감사해 했다. 아이들이 학교도, 직장도 잘 다녀주고 엄마 맘고생 안 시키고 바르게 자라주어 고맙다고... 특히 아내를 이해해주고 색소폰 연주까지 들려주는 사랑꾼 남편을 만나 고맙고 든든 하다고 했다. 봉사를 하거나 덕을 쌓는 사람은 그 공이 고스란히 자식에게 간다고 했던가? 남을 위해 애쓰고 봉사하는 공덕이 돌고 돌아 이웃뿐 아니라 가족의 행복 으로 되돌아 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봉사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며 삶이라고 말하는 최연화 회장의 보름달 같은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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