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산남동에 살게 된 덕에 오랫동안 쓰고 있던 나의 별명 ‘빵굽는 신부’가 요즘 들어 오프라인 세상에 조금 알려지게 되었다. 인터넷 사회적 통신망에 올린 나의 아이디는 최근 미원의 시골빵집이 유명해 지면서 조금씩 알려지더니 산남동에서 시작한 ‘사랑의 단팥빵’ 나누기 사업을 하면서 조금 더 유명해진 것 같다. 이것이 산남동에 살고 있는 덕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사랑의 단팥빵’같은 촌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자는 생각은 산남동에 살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로컬푸드 두꺼비살림에서 해오던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1+1 기부 운동’을 단팥빵과 결합시키자는 이야기가 마을 사랑방 같은 공유공간에서 우연하게 튀어나와 시작되었다.

10월 25일 오동균신부(좌)가 주민들과 단팥빵을 만들고 있다.  /사진_김동수
10월 25일 오동균신부(좌)가 주민들과 단팥빵을 만들고 있다.  /사진_김동수

그레이스 부엌과 산남동 마을주민 1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팀을 이루어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얼굴마담 격인 ‘빵굽는 신부’ 만 이름을 알리게 되었지만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수곡동 지역의 홀몸어르신들 200명에게 단팥빵을 전달하려고 기부행사를 시작하자 기부 물결이 계속되어 400명분을 주어도 될 만큼 모아졌다. 그래서 이웃인 성화동 지역의 홀몸어르신 200명에게도 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신한은행에서 성금을 기탁해 주어 올해 10개동 지역으로 확산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도록 뒤에서 도와준 이장섭 국회의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처음의 마중물을 만들어 주신 분들은 산남동의 주민들, 두꺼비살림의 소비자들이었다.

산남동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앉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움직이고 전파되는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마을의 이야기이다. 마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은 또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사랑의 단팥빵은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었다. 바로 관광두레 <넷제로 공판장> 만들기이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인 큰 이야기는 우리 마을에서 조그만 움직임으로 시작하여 커다란 꿈으로 연결된다. 일찍이 ‘용기내’운동을 시작한 두꺼비살림에서 ‘알맹상점’, ‘제로웨이스트’ ‘넷제로’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상점을 시작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게는 어느 쥔장이 그냥 시작하는 구멍가게 같이 생겼지만 여러 사람이 물건을 생산하고 그것을 또 서로 사 가서 나누어주는 이상하지만 따뜻한 마을 구 가게를 연상하면서 시작하려 하는 것이다. 이 가게가 어떤 모양으로 생겨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몇 명이서 이 꿈을 꾸고 꼬무락꼬무락 일을 시작하고 있다. 플라스틱이 없는 삼베실로 설거지 수세미를 뜨는 일부터 옥양목 무명행주 같은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모이고 수다 떨며 이야기를 나누고 옮기고 있다. 이렇게 움직이는 이 가게의 꿈은 어떤 모양인지 모르지만 마을로 점점 퍼져나가 누구나 생산자가 되고 그 사람들이 또 그것을 되사가는 이상한 가게를 꿈꾸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코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 처럼 유령이 사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가 생겨나고 거기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넷제로 상점>이라고 해야 할지 <알맹상점>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가게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산남동의 이야기이다.

산남동의 이야기는 이렇게 지금도 생겨 나고 옮아가며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다. 그 이야기는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꿈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되 청년들의 이야기와 꿈이 실현되는 마을의 이야기 말이다. 그것은 소설과 같은 허구 같지만 이미 우리들 삶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지금 공유공간에는 청년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사업화 시키고 나누고 보여주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춤이 되고 꿈이 되고 힘이 될 것이다. 이것이 산남동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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