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긴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일상이라는 생활의 굴레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우리의 삶을 조형하는 하나의 틀이 되어있다. 한가위의 긴 연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한 가닥이라도 찾아볼 여유를 가졌기를 바란다.

나는 한가위 명절을 통해 우리의 관습적인 공동체적 의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러모로 새로운 세대들에게 불편하기만 한 이러한 관습은 폐기되어야 마땅한가? 아니면 고쳐서라도 계승해야 할 그 무엇이 있는 것인가?

추석 차례를 지내는 것은 농촌공동체를 기반으로 형성된 씨족적 공동체의 대가족이 모이고 그 가족들이 하나의 정신으로 질서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즉 문화적 일체화의 한 표상이 조상제사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조상제사는 식민지 근대화과정에서 문중의 가부장 문화는 더욱 공고화되었다. 해방 후 더욱 가속화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핵가족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나 대가족의 문화적 가치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추석에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이 현상은 우리에게 삶의 주기처럼 고정된 채 각인된 문화였다. 그 중심에 조상을 공경하는 예를 문화화하고 이데올로기화 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에서 이러한 중세적이고 신분적인 위치를 고정하려는 대가족문화를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이제 대가족 문화를 완전히 부정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처럼 보인다. 작년에 이어 올해의 벌초는 아마도 거의 대행업체가 한 곳이 더 많아졌을 것이며 차례와 성묘는 핵가족별로 하거나 말거나 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현상이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문화적 주류는 대가족 향수에 젖어있는 산업화세대에게서 그 이후 세대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대가족 중심의 이러한 전통이 새로운 한가위 문화로 이행되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진대 거기에 어떤 내용과 방식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가위 명절 뿐 아니라 일년 중에 명절에 많이 하는 것이 선물이다. 선물에 과일이나 과자 같은 문화적 음식이 전달되는데 이것을 포장하는 재료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번 추석 선물에 쓴 포장에 어마어마한 플라스틱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한가위 선물에서부터 종이와 헝겊을 사용한 포장문화를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해본다. 문제는 디자인의 아이디어와 이에 대한 수용성이다. 선물이 크고 양이 많은 것을 선호하던 기존의 트렌드에서 작지만 정성과 아름다움이 곁들여진 선물로 변화시키고 그 포장을 종이나 헝겊등 생태적 재질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부터 생태문화적 전환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생활 문화에서부터 이러한 문화적 전환은 우리의 삶을 새로운 품격으로 상승시키려는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넷제로 공판장에서 만들어지는 생활문화소품들의 예를 들어보면 수세미 같은 주방용품에서 비누, 샴푸, 칫솔, 치약 등 목욕용품에 이르기까지 생태적 재료로 만든 용품을 사용하는 소비문화를 진작시켜야 할 것이다. 상가에서 포장된 물건을 사는 비율을 줄이고 가능하면 그릇이나 가방을 가져가서 물건을 직접 담아오는 상가문화, 화학섬유보다 친환경 섬유를 이용한 생필품, 의류 만들기 등이다. 명절에 뜨개질을 해서 만든 모자나 가방 또는 생활용품을 선물하고 나누면 우리의 한가위가 더욱 공동체적이면서 생태적인 문화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오동균 신부
오동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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