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10대 후반인 A는 용돈이 많이 부족했다. 여기 저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다가, 인터넷에서 ‘법원 경매 및 채권 관련 외근’이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 통화를 통해 채용된 뒤, 그쪽에서 시키는 대로 현금을 받아 그쪽에서 알려준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5일 동안 모두 310만원의 수당을 받았다. 그런데 그 전달된 돈은 보이스피싱 범죄로 속여 가져가는 것이었다.

검사는 A에 대해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의 방조범으로 기소했다. A는 채권 추심 일로만 알았지, 보이스피싱 범죄와 관련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변소하였다.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A. 1심 유죄, 2, 3심 무죄.
실제로 이런 사안이 무척 많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전화로 상대방에게 검사, 경찰을 사칭하거나 대출을 받아주겠다면서 그 비용을 요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방을 속여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보이스피싱을 전면에 내세우면, 일을 도와줄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니, 위 사안과 같이 채권 추심 또는 대출을 받아주는 것과 관련된 일이라면서 사람들을 모집한다. 돈이 달리는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이러한 유혹에 많이 넘어간다.

형사상 범죄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고의범만 처벌한다. 자신의 행위가 특정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적어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위 사안에서, A가 자신이 관여한다고 생각하는 채권 추심 일이, 비록 그 내용상 불법적인 것임을 알았더라도, 그것과 보이스피싱 범죄 사기와는 별개의 문제다.

A가 얼마든지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속아, 채권 추심 일로만 알고 관여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래도 요즘 보이스피싱이 크게 문제되고 있으니, 보이스피싱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미필적으로라도 알 수 있었지 않았느냐(미필적 고의) 하는 것이다.

위 사안에서, 1심은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를 선고하고, 대법원도 2심과 같았다.

1심은 “① A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 근무를 포함해 여러 사회생활을 해, 비정상적인 금융거래의 보이스피싱 가능성을 인식할 만한 학력 및 사회경험이 있고, ② 단순 업무의 대가로 경비를 포함해 5일 동안 합계 310만 원의 수당을 받았는데, A씨는 자신의 사회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이 같은 단기 고액의 수당이 이례적이라고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고, ③ 정부 및 언론에서 지난 수년간 비정상적인 금융거래업무가 보이스피싱일 수 있다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례적인 행위가 보이스피싱과 관련될 수 있다는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A의 진술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A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① A에게 업무를 지시한 B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조직원이라거나, 수거한 돈이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인한 피해금이라는 사실을 A가 알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없고, ② 설령 A가 불법적인 일에 가담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인 금전거래는 도박 자금, 탈세, 불법 환전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는 점 등에 비춰 A가 자신이 하는 일이 불법적인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넘어 ‘자신과 연락하는 B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조직원이라거나, 자신이 수거한 돈이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금’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③ 보이스피싱과 관련해 정부나 언론에서 홍보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 및 A가 어느 정도의 사회 경력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A가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들로부터 편취한 돈을 수거·취합하는 방식'까지 알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달리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 피싱 피해금을 수거·취합하는 과정의 일부'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형사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고의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인데, 그 경계에 있는 것이 미필적 고의다. 위 보이스피싱 관련 사안에서, 법원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 판결은 앞으로 다른 비슷한 사건의 수사나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미필적 고의의 인정 여부는 구체적 사안에서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관련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있다.

오원근 변호사(오원근변호사법률소)​​​​​​​wonishs@hanmail.net
오원근 변호사(오원근변호사법률소)wonish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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