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규 사회복지사
김석규 사회복지사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혜원) 김석규 사회복지사. 그와 두꺼비 마을과의 인연은 빛뜨락축제로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산남동 두꺼비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빛뜨락축제를 시작으로 마을과 함께하는 장애인복지를 실현 하고 있는 김석규 부장을 만나보았다.

별처럼 수많은 복지관 중에 ’혜원‘
1996년 개원한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 그곳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딛은 지 20년. 혜원장애인복지관의 김석규 부장은 2002년 12월 20일 첫 출근을 했다. 사회복 지학과를 졸업했으니 당연히 복지관에 취직했다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사회복지사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노인,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대상과 여러 형태의 시설이 있고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기도 하는 등 가는 길이 넓다. 그는 학부 시절 혜원의 1대 관장님께 장애인복지론 강의를 들은 인연으로 혜원에서 봉사활동을 했었고 졸업 후 복지관에 입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는 “봉사하는 동안 혜원의 복지기획팀의 사회조사사업에서 장애인에 관한 다양한 조사를 했어요. 가정환경, 경제사정, 욕구와 요구도 등 그들 에게 적합한 봉사를 위해서도 꼭 필요했기에 뿌듯했고 굉장히 보람을 느꼈었던 것 같아요, 또 봉사하는 동안 훌륭하다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혜원의 분위기가 제가 이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결심을 하게 한 것 같아요.”

김석규 부장(사진오른쪽)이 ‘그룹홈 야고보의집/모니카의 집’ 벌목 작업과 펜스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석규 부장(사진오른쪽)이 ‘그룹홈 야고보의집/모니카의 집’ 벌목 작업과 펜스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혜원에게 받은 선물
그는 혜원에서 주간 보호시설, 그룹홈 지원관리, 장애인 직업재활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직업재활은 장애인 복지의 꽃이라는 말이 있어요. 가장 오랜 시간 담당하면서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 곧 저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되었어요. 그들이 취업을 꿈꾸는 것이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저도 깨닫게 되었지요. 장애인 자녀의 취업을 기뻐하며 내민 촌지를 돌려 드리며 저도 그 부모님 만큼이나 기뻤답니다. ” 그는 “혜원은 늘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기와 힘을 주었어요. 그리고 인생의 반려자라는 최고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으며 도전하게 하는 혜원에게 보답할 일만 남았습니다.”

빛뜨락축제에서 사회보는 모습
빛뜨락축제에서 사회보는 모습

혜원의 한 수, 빛뜨락축제
“가장 보람되고 의미있었던 일 중 하나는 빛뜨락축제의 외출을 시도한 것이라고 할까요?“
1996년 개관한 혜원은 2002년부터 빛뜨락축제를 시작했다. 복지관 안에서, 복지관 사람들끼리만 함께했던 빛뜨락축제는 2016년 처음으로 복지관 밖에서 진행했고 2017년 산남동에서 개최하면서 처음으로 주민들과 함께했다. 2017년 빛뜨락축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반자로 만든 첫 번째 축제였다. 그는 마을의 큰 마당에 온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와 장애, 비장애와 관계없이 함께 밥을 먹고 부스체험을 하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고 그 행사를 직접 주관한 것이 무엇보다 보람 있다고 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빛뜨락축제를 비대면으로 진행한 것은 아쉽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함께라는 인식이 커지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축제가 되었다.

사회복지사 김석규의 꿈
그는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찾아가는 장애인 인식 교육 강사도 하고 있다. 50인 이상의 모든 기업이나 단체는 1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교육을 나가보면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란다. 장애인복지관에 근무한다고 장애인 인권 감수성이 저절로 높아지거나 다 높은 것은 아니다. 혜원은 복지관 내 직원들의 장애인 인권 감수성 교육, 의식개선,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표어 만들기 대회 등 꾸준히 직원들의 마음을 살피고 성장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운영지 원팀을 총괄하며 인사관리도 하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어떤 사회복지사를 원하나요?”
“사업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일 처리가 능숙해도 장애인분들에 대한 배려, 인식, 감수성이 낮으면 복지관에서 일하기 어렵지요. 일 잘하는 개인주의보다 함께의 가치를 아는 ‘덕’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김석규 부장은 사회복지사로 혜원에서 정년까지 있고 싶다고 했다. 또 그 이후엔 혜원에서 쌓은 노하우와 정성을 다른 곳에서 나누고 싶은 꿈도 있다고 한다. “총이 기관이라면 총알은 직원들입니다. 총이 아무리 빛나고 좋아도 총알이 부실하면 좋은 총이 못되지요.”

‘덕’이 있는 사람 김석규 선장님
다시 태어나도 사회복지사가 되어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이 사람. “이곳, 이 일은 저를 온전히 다 사용하게 합니다. 항상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혜원의 문화가 학교 다닐 때 땄던 레크레이션 자격증도 꺼내게 했지요. MT, 발대식에서 사회를 봤던 것처럼 복지관의 다양한 행사 에서 직접 사회도 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찾게 했어요.” 혜원에서 그는 ‘석선장’이라는 불린다. 야구동호회 회장직을 맡으며 팀원들을 살뜰히 챙기다 보니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의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닮았다고 얻은 별명이란다. 그는 ”사람을 챙기면 일은 자연스럽게 온다고 말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챙김이 좋아요” 어쩌면 사람을 챙긴다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는 사랑스러운 딸들이 사회복지사가 되어도 좋다고 했다. 대를 이은 장인들처럼 100년 된 사회복지사 가문도 환영한단다. 오랫 동안 했다고 다 장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투자 하고 진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장애인분들과의 동행은 긴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더군다나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 어려운 일을 참 잘 해내는 김석규 부장님!

우리마을백과사전은 그에게 ‘덕’이 있는 사회복지 ‘덕’선장이라고 명명해본다. 그가 덕으로 배를 운전한다면 나도 기꺼이 그 배를 타고 싶다. 그는 지역사회 안에서 느리지만 함께 가고자 하는 두꺼비마을신문의 철학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했다. 우리가 그가 좋은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인정과 칭찬에 힘을 얻어 나를 100% 이상 사용한다는 사람.
이곳이 자신에게 꼭 맞는 곳이라는 그의 말에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덕이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방향도 점검하게 했다. 함께함에 훈훈함과 따뜻함을 전하는 그의 향기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리라.
‘덕’선장의 배를 타는 모두의 행복과 안전을 빌며 돌아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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