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잊을 만 하면 흉악범이나 패륜적 범죄에 대한 뉴스가 나와서 우리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50년 전에 상상도 못했던 사회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그만큼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말이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은 같은 속도로 자원의 지리적 편중을 초래하였다. 도시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집과 그 지리적 위치는 ‘삶’의 의미로서의 거주보다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부각되었다.
큰 도시가 주는 익명성이라는 편익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파편화되었고 ‘나’와 ‘내 가족’만 잘 살아 보겠다는 욕심이 보편적 가치가 되지 않았나 싶다. 타자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고 도구화하는 풍조의 한 가지 원인으로 지역 속에서의 인간 관계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나도 그랬다. 인사청문회에 나온 정부의 요인들처럼 위장전입을 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도시가 주는 익명성의 편리함에 젖어 살았다. 내 일, 내 새끼, 내 가족만 신경 쓰기에도 바빴다. 그런데 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은 더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한 삶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박한 시민으로서의 희망은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가 인류와 글로벌 문제에까지 범위가 넓어지기도 한다. 오늘날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의 문제도 결국 자원의 독점욕에 관한 문제이다.
미래 세대에게 희소한 자원을 앞 다투어 차지하려는 흉한 모습을 가르치는 것 보다 타자를 배려하면서 부족한 자원을 품위있게 절약하고 나누어 쓰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기와 새끼를 부양하도록 프로그램 된 포유동물로서 호모 사피엔스가 얻은 더 큰 진화의 선물은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 욕망을 제어하는 앞이마엽이라는 뇌의 부분이다.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 인류가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세상은 ‘마을’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언젠가 화석연료의 생산은 줄어들 것이다. 우라늄이나 다른 연료도 마찬가지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하겠지만 더 쉽게 에너지 소비와 탄소배출을 줄이는 문제에서도 마을이 대안이다. 로컬푸드 운동처럼 먹을거리 상품의 운송거리를 줄여야하듯이 앞으로는 사람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지역 공간 ‘마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야 한다. 특히 여가활동은 당장이라도 우리 마을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모임 두꺼비앙상블 같은 마을의 문화공간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손현준 (산남리슈빌 입주자대표회장,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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