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과학 기술에 다시 말을 걸다’를 읽고

윤리적인 인간과 윤리적인 과학
다양한 책들 중에 ‘철학, 과학에게 말을 걸다’를 선택한 이유는 철학과 과학이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함을 느낀 나에게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 3때부터 2년간 다녔던 KAIST IP기업인영재교육원에서는 늘 과학과 같은 비중으로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처음엔 생소했지만 꾸준히 들으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윤리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인공지능이 일상화되고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 윤리를 떠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다. 또과학자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연 이라는 생명체, 또 인간 스스로를 위해서 라도 늘 윤리적이고 윤리적 가치를 고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도시지만 산이 이웃해 있고 두꺼비와 공존 하기를 꿈꾸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마을에서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두꺼비를 로드킬에서 구해주고 두꺼비 알을 지켜준다. 착한 사람과 착한 자연의 공존이 가능한 것처럼 윤리적인 인간과 윤리적인 과학의 공존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는 요즘, 어느 날 받을지 모르는 인공지능의 공격에 대처,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과학에 윤리를 묻고 과학 기술에 인문학적, 철학적 반성을 시도한다는 머리 말이 나도 이 책에 말을 걸게 했다. ‘자율 주행차 사고는 누구의 책임일까?’, ‘인공 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 갈까?’, ‘유전자 조작 아기는 정당할까?’ 등 하나같이 개인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 책은 요즘 뜨거운 감자인 질문들을 던져주고 이 문제에 철학적인 접근, 사회적 합의 등의 방법을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책에서 언급된 기차길 딜레마를 살펴 보자. 자동차의 상황에 대입해서 어린아 이가 도로에 넘어져 있고 성인 운전자가 이를 피하면 운전자가 죽고, 그대로 가면 아이가 죽는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인공지능 자동차라면 어떻게 판단할까? ‘인공지능에게 생명이 가장 우선이다.’라고 입력했다고 가정했을 때 인공지능은 누구의 생명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작 동으로 아무도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양한 경우에 대처할 수 있도록 상황 설정을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과연 누가 그것을 결정할 수 있을까?
기업? 사용자? 아니면 정부? 이처럼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서는 결국 과학 기술 그이상의 차원에서의 윤리적, 철학적 접근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있었다.
또 책에서는 윤리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제시 했다. 섣부른 예측일까? 나의 견해로는 약인공지능의 일자리 대체, 빅데이터 문제와 같은 주제들은 미래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빅데이터는 기존 데이터에 서의 양적인 변화이며, 약인공지능도 결국엔 현재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양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2차 산업혁명 초반 엄청난 우려 속에서 핍박받던 로봇이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 재원으로 자리 잡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양적 변화의 주제들은 초반의 반발과 과도기를 거쳐 결국 사회에 정착할 것이고 난 양적 발전의 대해 책에서 언급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합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에서 언급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합의란, 기술들에 의한 이익의 분배에 대한 합의를 말한다. 이 내용은 영재원에서도 배웠던 기억이 난다. 미래의 인간은 결국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 기존의 일, 즉 업은 인공지능이 하게 하고 우리 인간은 노는 일, 즉 창조적 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책에서도 만약 인간의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면 결국 인간은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해도 이득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때 우리는 놀기만 하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놀 때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해 얻은 이익이 우리 에게 공평하게 오느냐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단순히 찬성과 반대에 대해서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을 했을 때의 이득과 불이익이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합의는 결국 도입될 수밖에 없는 양적 변화의 주제에서만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양적인 변화의 주제가 아닌 강인공지능이나 냉동인간, 유전자변형 등의 주제들은 양적인 변화의 주제들 보다 그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 더 근본 적인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기에 이득과 불이익의 분배에 앞서 책에서 말하고 있는 이를 도입할지 말지에 대한 윤리적, 사회적 합의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종의 출현과 해결책
나는 이 책 속 주제들에 대해 통합시킨 나만의 해결책을 말하기 전 앞서 말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더욱 위험한 주제들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려 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합의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들은 인간이라고할 수 없는, 어쩌면 새로운 종의 출현이 가미되는 문제들이라는 공통점을 찾았다.
대표적인 예로 앞서 언급한 강인공지능의 출현, 냉동인간, 유전자변형 인간 중 강인 공지능은 스스로 인간의 뇌와 같은 독창적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생물은 아니지만 독립적인 새로운 종으로 볼 수있을 것이다. 냉동 인간과 유전자변형 인간 또한 인간 그 이상의 지능이나 신체를 가졌기에 어떻게 보면 새로운 종이라고볼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이나 그 이상의 지능과 신체적 능력을 가질 수 있기에 위험 하고, 그렇기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주제들을 윤리, 사회적 협의로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지만 난사실 우리 인간이 해왔던 양적인 변화에 대한 합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변화이 기에 윤리, 사회적 접근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윤리, 사회적 접근 외에도 크게 두 가지의 해결 책이 더 제시하고 싶다. 강 인공지능을 예로 들면 아무리 윤리적, 사회적 접근을 해도 어떤 누군가의 악용 가능성이나 그 자체의 위험성은 막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러한 복잡한 문제 같은 경우에는 기술적, 과학적 해결책이 동시에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의 사고에서 인간을 해치는 사고를 원천적으로 봉쇄할수 있는 기능이나 해킹 등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후 실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과학 기술들이 발전하려면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법적 규제는 ‘00에서는 드론의 비행이 가능하다.’와 같이 YES를 기반으로 한 규제이기 에 법에 명시된 예외 상황 빼고 나머지의 경우는 모두 규제를 당한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법률상 ‘00에서는 드론의 비행이 불가능하다’와 같은 NO 기반의 규제이기에 나머지 상황에서는 좀 더 과학 발전이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규제가 이러한 형태라는 것이지 든 예시가 실제로 법률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런 YES기반 규제는 결국 과학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이는 책에 언급된, 그리고 미래에 생길 문제 상황들의 과학적 해결책 제시의 걸림돌이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주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이어갈 때 결국은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회의에 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과학의 발전을 제어하고 윤리적인 접근만으로는 책에 나온 여러 가지 문제뿐만 아니라 미래의 다양한 양적이 아닌 질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인간적인 선한 발명품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일수록 인간은 가장 인간적이어야 한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윤리적인 인간을 포함한다.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지능의 모방품이자 인간의 발명품이 아닌가? 우리 인간의 지능이 윤리적이지 않다면 인공지능에게도 윤리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의 윤리성과 인문학적 생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래에 찾아올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인간의 철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또과학 기술, 규제 개혁이 조화를 이루어 일어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다는 꿈도 가지게 했다. 결국 인간의 탐구로 발전하는 과학은 가장 인간적인 인간의 선한 발명품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얻게 해준 이 책을 모두에게 추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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