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백과 무형문화재 조애란 명창, 김철준 고수’

8월의 어느 날 마을 친구의 엄마아빠로, 또 무대에 서는 멋진 판소리명창, 고수로 알고 지낸 김철준, 조애란 부부를 만났다. 코로나19로 5월까지는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었고 6월부터 하나둘씩 공연을 시작하고 있다고 하셨다. 새로운 시스템의 온라인 공연도 처음엔 관객이 없으니 흥이 덜 났지만 조금씩 적응이 되신단다. 코로나19이후 시대에도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 중 유튜브도 활용할 계획이라니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는 요즘 세대가 유튜브를 통해 국악도 가까이할 수 있는 계기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되었다. 예술 부부의 일상과 꿈에 대한 끊임없이 정겨웠던 대화의 장! 4차산업시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우리의 것을 지키며 새로움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느낀 감동을 그 분들의 목소리로 전하고자 한다.

 

 

나의 역사에서 답을 찾다!
나, 조애란! 언제부터 판소 리를 했냐고 물어오면 “대학때, 20살쯤”이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어부였던 아빠는 남해 섬마을의 상쇠였다. 정월대 보름, 명절이 되면 아빠는 온 마을을 다니며 연주했고 난 그 소리가 싫었었다. 집에 가득했던 꽹과리와북, 농악반어린시절. 대학 풍물패 활동을 하던 어느날 아빠의 그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회과학대 학을 다니는 딸이 공무원이 되려나 하셨지만 2학년때 휴학을 하고 물어물어 대구 팔공산 유성준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갔다. ‘신사랑가’를 불렀더니 소리는 괜찮은데 20살이 넘었으니 취미로 하라셨다. 오기가 나서 더 열심히 배우러 갔더니 가르쳐 주시더라. 늦게 시작했으니 더 열심히 했다. 판소리는 한과 시원함이 있어서도 좋지만 현장성과 재구성이 허용된 것이 좋았다.
전통악기들은 가죽, 나무 등 자연을 재료로 해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낸단다.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나는 늘 그 안에 살고 있었다. 판소리를 배울때 보통 문화재 선생님의 길을 따라 무형문화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목표가 달랐다! 판소리의 고유 소리법으로 현시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창작판소리를 만들어 봐야지! 그래서 라디오방송 중 대본을 가지고 판소리와 말을 오가며 창의적으로 방송하셨던 유성준 선생 님을 찾아갔다. 정순임 선생님께 보내주시며 제대로 배워 꼭 창작판소리를 만들라 하셨고 창작판소리로 활동하는 나를 뿌듯해 하시는 그 분께 감사하다. 난내 목표와 가깝게 가고 있는 중이고 그 과정에는 나의 스승님들과 관객이 있다.

 

김철준, ‘이것으로 인생을 살아야겠다!’
대학 때 풍물패를 하다가 청주놀이마당 ‘울림’에 소속되고 나 김철준은 북에 인생을 걸었다. ‘이것으로 인생을 살아 야겠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예대 국악과를 다시 졸업하고 서원대 공연예술학부를 또졸업하고 교직 이수도 했다. 교육가 집안이라 음악을 해도 선생님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교육도 좋지만 직접 하는 공연이 더 좋았다. 현장에서 관객과 호흡하고 살아있는 표정을 보는 것이 큰 힘이고 그냥 북이 마냥 좋았다. 놀이마당 ‘울림’도 사물놀 이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전통에 현재를 위한 다른 무언가를 가미하려고 노력한다. 시대에 맞거나, 또 의미에 맞는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공연 하는 나 자신도 행복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원동력은 관객들의 표정과 박수 하나로 이미 충분하다!” 요즘은 고법(敲法), 브라질 타악, 아프리카 타악 등을 배운다. 세계의 온갖 북을 다 배우고 싶다. 난 두드릴 수 있는 것은 다 두드려본다. 그것이 제일 재밌다. 나의 일도 북이고 취미도 북이다.
예술가는 이기적인 것 같다. 자신이 즐겁고 행복한 것을 계속하고 나의 이기적임을 통해서 사람들을 행복 하게 한다. 나는 그 이기심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몇 시간씩 연습한다.


“단 한번도 후회가 없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예술 동료인 두 분! 가족이기에더 따꼼한 지적들이 큰 힘이 된다고 하셨다. 무대에 오르기 전과 후 서로의 격려와 배려 덕분에 결혼만족도가 높단다. “단 한번도 후회가 없다!”고. 같은 직종에 있다 보면 서로 비밀도 없고 요즘같이 힘들 땐 함께 힘들 다지만 알기에 오해하지 않고 배려할 수 있기에 최고 라고 말이다. 또 부부 서로에게 가장 큰 외조는 서로의 일을 집중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것, 또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두 분은 늘함께 연습하고 의견을 나눈다며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의 노래와 연주에 만족하지 못하는 예민함이 필요하고 그것은 끊임없이 연습하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이 정도면 되었다! 만족하고 안주하는 순간 노래도 연주도 정체되고 안주하는 순간 예술과 감동은 끝난다고 믿고 연구하고 소통하고 공부하면서 세상에 똑같은 무대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단다. 프로라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습해야 한다는 마음이 같다는 두 분. 그래서 두 분의 무대는 늘 같은 판소리가 아니고 늘 같은 사물놀이가 아닐 것이다. 또 오래된 것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현대인들에게 맞는 국악 세계를 선보이고 싶어하셨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잊혀졌던 삶과 노래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민예총 국제교류로 북간도, 대만, 일본, 카자흐스탄 등우리 동포들을 찾아가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말은 몰라도 아리랑은 부르는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을 보며 그들을 찾아가 살아온 역사를 기록하고 알아가는 일, 전통이 이어지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 보듬어 안을 수 있는 힘으로 새롭게 창작하고 역사를 기억하고 싶어하는 꿈이 많은 예술부부였다.

판소리 공연장면. 소리 : 조애란, , 고수 : 김철준
판소리 공연장면. 소리 : 조애란, , 고수 : 김철준
‘놀이마당 울림’의 바투카다 공연장면
‘놀이마당 울림’의 바투카다 공연장면

 

무대에서 멋지게 노래하고 연주만 하시는 줄 알았다. 꿈이 많고 넓다고 해야 하나? 소리꾼으로써 할 수있는 최대한 많은 것, 세상의 북으로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에 도전하는 참으로 닮은 두 분.
“국악으로 무엇까지 할 수 있나?” 이 정도 경지면 쨘 ~ 하면 바로 나올 것 같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두분은 “예술가로써의 행복한 숙명이 아닐까요?” 라고 되묻는다.
고교 시절 김두관 책방, 남해신문사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는 조애란 명창은 두꺼비마을을 보며 좋은 어른들을 보며 어떤 어른이 될지를 고민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생각이 자유롭고 주관이 뚜렷한 요즘 아이들. 그들이 공무원을 꿈꾸며 스스로 자유를 원치 않는 세태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연습하는 두 분의 모습이 더돋보였다. 두 분에게 우리마을인물백과는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인물백과 무형문화재 조애란 명창, 김철준 고수’라고 명명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보는 어른이 전부라고 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상상하고 찾아가면서 정답보다는 해답을 찾아 가는 두 분의 삶을 보여주는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또 역사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예술 가들에게 응원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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