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문득 코로나19는 어떤 사명으로 태어났을까?란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멈추고 변했다. 두꺼비마을신문에서 진행하는 마을학교, 마을연구회 등도 멈춤 후 조심스럽게 시작했고 공간마련이 어렵다는 소식에 은샘교회 강진국 목사님께서 마을을 위해 ‘ART_SPACE 쉴만한 물가’를 흔쾌히 내어주셨다. 그곳에 가면 늘 밝은 미소로 맞아주고 무슨 일이든 척척 도움 주시는 분이 계신다. 목사님이라고 했다. 은샘교회의 백은주 부목사님. 여자 목사님은 처음 뵙는 것 같다. 실제로 일부 교단에서는 여자를 목사로 세우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성경 디모데전서에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는 말씀 때문이란다. 백은주 목사님은 왜? 어떻게? 목사님이 되시고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 꼭 교인이 아니라도 마을 사람들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살아 숨쉬는 쉴만만 물가에서 백은주 목사님을 만나보았다.


도전의 연속 20대
“처음부터 목사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어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국문과에 입학했었죠. 저의 20대는 신학과 국문학보다는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도전과 경험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87학번이었던 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여성학, 사회학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봉사를 하기도 했었죠. 또 한국문화, 민속학에 관한 관심으로 무속 구술 채록, 고성오광대 탈춤공연 등을 주관하는 놀이마당 문화센터에서 활동하며 도전하고 알아가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또 그런 과정에서 만난 누군가가 “당신은 꼭 종교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시절 저는 교회에 한계를 느꼈어요. 사회는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운데 교회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설교, 너무 평화롭게 노래하며 찬양하는 천국같았고 그 안에서 반주하는 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다른 종교는 어떨까?’ 의구심에 경험도 해보았지만 종교의 세상은 그들만의 리그 같았어요.”


어쩌다 목사님!
“졸업 후 중국어 공부에 열심이던 제게 중국에 선교사로 가는 건 어떠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결혼을 했어요. 목사님의 자녀로 의무방어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찾고 싶었던 나의 길. 무엇인가 잘 풀어지지 않은 느낌. ‘예술가의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에 개인 사사까지 받으며 장구를 쳐보기도 했고, 책 읽고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원장님도 되었지요. 항상 뭔가 부족함에 방황하며 다시 하느님 앞에 앉는 느낌. 뚫려있는 건 하늘뿐인 것 같았던 30대 중반 즈음 진심의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신실한 교인이 되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던 중 당시 부목사님이 신학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하셨고 약속한 것처럼 전도사님들과 주변의 분위기가 그랬지요.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37살에 신학 공부를 제안받고 ‘그냥 신실한 신앙인이 되면 안될까요?’ 하느님께 호소하며 시간을 보내다 43살에 원서 마감 20분 전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았어요. ‘100% 는 최선이 아니다. 120%는 되어야 최선이다’라고 생각하는 뭐든 열심히 하는 백은주. 학원 마치고 새벽 내내 공부해서 시험을 보았어요. 그때,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큰아들이 “나 밥하는 거 가르쳐 주세요. 엄마는 공부해!” 지금 생각해보면 신학은 늘제게 하지 않은 숙제 같았던 것 같아요. 신학교를 고민 하며 담임목사님과 상담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여자 목사는 쉽지 않다고, 크게 생각하고 전문영역을 쌓으라고... 담임목사님과 상담한 것을 아시고 “왜 목회를 하게 할 생각을 못했지?” 하시며 누나가 공부를 하면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라 동생에게 당부하셨다는 아버지. 모두의 도움과 염원으로 어쩌다 목사가 되었네요! 마치 운명인 것처럼”


목회자 백은주의 꿈!
은샘교회 부목사님으로 오신지 4년. “하나님은 하느님만큼이나 이웃도 사랑하고 섬김과 나눔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문화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를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되었나?’ 신기하게 청소년부를 맡고 문화사역을 하게 되었어요.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를 해도 똑 부러지게 하고 싶은 성격 때문에 발로 찾아 나서고 제대로 배웠던 것들이 지금은 큰 도움이 됩니다.

두꺼비마을사진전 전시 준비를 마치고 ⓒ조현국
두꺼비마을사진전 전시 준비를 마치고 ⓒ조현국

목사가 꿈이라면 아니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도전과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우물만 파는 것과 또 다른 장점을 발휘하지요. 교회는 회복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픔이 있는 사람이 치유 받고 회복된 후 변화된 삶으로 치유와 회복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로나로 인한 감사함이 있어요. 신천지로 인해 그들만의 세상을 보았고, 멈춤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무조건 안전한가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하라고 했던 하나님의 뜻, 안에만 있지 말고 밖도 사랑하라는 싸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회자로서 늘 긍정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선하고 변화하려는 자세, 그리고 교회를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움에 도전 하고 기여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의 갈 길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도하며 찾아가는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0%도 되지 않는다는 여자 목사님! 많은 것에 도전하고 자신의 삶 속에 녹여 여러 사람을 위해 나누는 삶.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쉼 없이 고민하고 실천하시는 목사님. 백은주 목사님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라는, 내 영역만이 아니라 주변, 밖을 둘러 볼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궁금하면 달려가 경험하고 더불어라는 사명을 가진 모습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멋진 돈키호테 같았다. 우리마을백과사전에서는 백은주 목사님의 직업을 “이유 있는 도전왕! 돈키호테 목사님”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하느님이 행하지 아니하시고 옳은 말씀만 하셨다면 지금의 하느님이 아닐 것이 분명한 것처럼 백은주 목사님은 늘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 오늘의 이멋진 모습으로 두꺼비마을에 있다. 그리고 그 도전과 실천의 이유가 함께 어우러짐에 있기에 그녀가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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