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비루스': 한국에서는 코로나19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COVID-19 또는, 더 일반적으로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독일어 식으로 발음한 ‘코로나비루스’라고 부른다.
▲ 사재기 현장 사진. 지난 3월 13일 금요일 모든 상점과 식당 등의 영업 금지령이 발표된 날, 비엔나 전역에서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다.

오스트리아에 첫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온 건 지난 2월 25일.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곳의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두 번째, 세 번째 확진자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일상은 3월 들어 이웃 나라 이탈리아의 상황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3월 10일부터 본격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책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미술관과 박물관 등은 모두 휴관했으며 이탈리아나 스위스로 가는 국경도 하나둘 폐쇄되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재택근무를 선택했고 공사 현장 등은 작업이 중단되었으며, 마트나 약국 같은 생활에 필수적인 가게들을 제외하곤 상점 및 식당 등의 영업마저 금지되었다. 또한, 정부 지침상 꼭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러 가는 경우 등이 아닌 이상은 외출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전시민이 준 자가격리 상태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이다.

▲ 도시는 혼란에 빠졌지만 도나우 강은 여전히 평화로이 흘러 간다.

이러한 모든 조치가 시행되기 시작한 16일 월요일을 기점으로, 유럽의 중요 도시 중 하나이자 늘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볐던 비엔나는 기약 없는 침묵에 잠겼다.
  거리에 나가보면 여전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평소에 비해 현저히 통행량이 줄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불이 꺼진 가게 들로 인해 거리의 풍경은 더욱 삭막해 보이고, 그나마 열린 마트나 생필품 가게들도 여느 때와 달리 붐비는 일은 없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던 때전국적으로 발생했던 사재기 현상은 완화되 었다는 것이다. 아예 도시 전체가 봉쇄된 티롤 주의 분위기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비엔나에선 필요한 식료품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은 없게 되었다.

▲ 도나우 운하를 따라 그려져 있는 그래피티. 이 장소에 그리는 것은 합법이다. 한 번 완성된 그래피티는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고곧 다른 작품으로 덮이고 또 덮이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시의적인 주제가 종종 등장하는데,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주제로 한 그래피티를 여럿 볼 수 있었다.

타지에서 이 사태를 맞게 되어 운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과는 다른 오스트리아 사회의 면면을 알 수있는 기회가 되었다고도 느낀다. 그 차이를 가장 뚜렷하게 느낀 건, 이곳에선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였다. 그러니 당연히 ‘n번째 확진자’라는 이름표도 붙일 수 없고, 누가 누구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인지에 대한 자료도 시민들은 알 수 없다. 현지인 친구에게 이동 경로를 공개하는 것이 추가 확진자를 빨리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묻자, 이동 경로에 따른 접촉자를 찾아내는 건 대응팀이 해야할 일이며, 무엇보다 그러한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정보를 일반 시민에게 공개할 수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확진자가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잤는지까지 공개하는 수준이었기에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그 와중에도 최소한으로 보장해야 하는 개인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이곳에선 너무나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Naschmarkt, kettenbrückengasse: 16세기부터 있던 비엔 나의 대표적인 시장. 원래는 우유병을 팔던 것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일반적인 식재료들을 파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온 이국적인 식재료들을 주로 판매하며 중동식, 지중해식 등의 다양한 식당도 들어서 있다.

또 한 가지의 큰 차이는 바이러스가 몰고온 사회 시스템의 마비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언론들도 연일 보도하듯이 유럽 국가들의 코로나 대응은 우왕좌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답답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러한 위기 상황이 되니 평소 이들이 구축해놓은 사회 보장 시스템이 어떻게 빛을 발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3월 19일 현재까지 오스트리아에는 코로나 위기로 인해 수입이 없어 위기에 처했다는 시민 들이 약 오천여 명에 달한다. 오스트리아에는 AMS라는 직업 교육부터 고용, 실업 등의 노동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소속 센터가 있는데, 이 오천여 명의 사람들은 이곳 으로부터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매달 평소 월급의 80-90%의 실업 급여를 받을 수가 있다. 여기엔 실직자뿐만 아니라 주 10시간 이하로 일이 줄어든 노동자들 또한 포함된다. 이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있던 제도이며, 단지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해 받을 수 있는 금액의 비율만20-30% 정도 늘어난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당장 일이 없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러한 특별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가로부터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안정감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냐에 따라 변수가 생기는 이러한 단발성 정책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조금 잠잠해지면,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사회 보장 시스템을 구축해놓는 것이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할 수 있는지, 그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논의 되었으면 좋겠다.
  도시는 침묵에 잠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봄은 오고 있다. 이제 곧 만발할 푸릇한 잎들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껏 움츠러들 었던 도시들도 다시 활기와 생명력을 되찾는 날이 서둘러 오길 바란다.

▲ 글·사진_ 조서연

글쓴이의 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어요. 일 년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언어를 배우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글쓴이는 두꺼비마을신문 제1기 어린이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연극을 전공하는 대학생(휴학생)입니다. 지난 18일 실무 편집회의에서 유럽의 코로나-19 상황을 싣자는 의견에 따라 오스트리아 비엔나 현지에서 기고해왔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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