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이다. 이번 호 편집회의에서는 연말을 맞아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 동의했다. 그 순간 마을기자들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렸으리라! 최명천 마을기자가 얼마 전 본인의 아픈 사연을 전하겠다고 용기를 내주었고 구진숙 마을기자는 노년에도 탁구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겠노라고 했다. 막상 이야기를 담고 다시 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마을’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편집자의 말>

 

단풍 곱게 물들어 더 없이 좋은 이 가을에 올해 90세인 아버지가 가출을 하셨다.
“나는 이제 영원히 떠난다. 너의 아픈 엄마 편안히 잘 알아서 모시고,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찾지 말아라” 짧은 쪽지편지를 남기 시고 이른 새벽 집을 떠나셨다.
우리 4남매는 모두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 지만 모두 받지 않으셨다. 가출신고와 위치 추적으로 아버지가 아버지의 고향인 강릉에 가신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화만 받아 주기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늦은 저녁에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하셨다.
“왜 전화했어?” 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 리였다.
“아버지 여행가셨어? 어디에 가셨는 데? 오늘밤만 주무시고 우리 집에 오세요 아버지.”
상황을 모른 척 반갑게 전화를 받으니 한참을 아무 말 없으시던 아버지, “오늘 저녁 생각해 보고 낼 아침 전화할게”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제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가슴 졸이며 긴긴 시간을 뜬눈 으로 밤을 새웠다.
깔끔하시고 정직하시고 부지런한 아버지!
늘 베란다 가득 화초를 가꾸시던 아버지!
작은 꽃 한송이에도 이쁘시다 어루만지시던 감성 많던 그런 아버지가 불만과 짜증과 잔소리가 늘어만 가기 시작한 것은 엄마의 3번의 대수술로 오랜 시간 고생하시다가 5 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되 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의 대화가 더 이상 어려워지면서 아버지는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하였다.
웃음을 잃어가고 삶의 의욕마저 잃어가면서 아버지의 호소는 점점 늘어갔다. 우리 4 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기가 죄스러워 90의 연세에 힘에 부치시면서도 요양보호사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오랜 시간 엄마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다 힘겨우신 아버지는 가출을 선택했다.
다음날 점심 무렵이 되어서 아버지는 딸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 왔다. 모자를 눌러 쓰고, 배낭을 메고 한 손엔 캐리어 가방을 끌 고 오신 아버지의 모습이 초라하기보다 당당하신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를 와락 끌어안으며, “아버지 무사히 돌아오셔서 고마워요.”, “작은딸아 고맙 다.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전화해줘서”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신 아버지께서 안정을 찾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딸 사위에게 아픈 아버지의 속마음을 모두 털어 놓으셨다. 더 이상 엄마를 돌보기가 힘들다시며 요양원으로 엄마를 보내라고 하셨다. 아버지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이젠 아버지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하시면서 책도 실컷 읽으시고 가고 싶은 곳 다녀도 보고, 쉬고 싶을 때 맘 편히 쉬기도 하면서 남은 시간을 홀로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1주일을 머무시던 아버지는 다시 엄마가 계신 집으로 돌아 가셨다. 우리 4남매는 아버지가 원하시는 데로 해드리기로 하고 엄마는 남동생이 모셔갔다. 엄마와 동행했던 긴긴 시간을 끝내고 아버지의 홀로서기가 이제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아버지께 전화를 건다.
“아버지 오늘은 어떠세요?”
“그래 어깨가 아파서 물리치료 받고 왔다.
이젠 괜찮으니 전화 자주하지 마라. 외롭지만 맘 편히 잘 지내고 있다. 딸아 고맙다” 엄마 없는 텅빈 집에 홀로 쓸쓸히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 온다.
‘아버지! 모든 것이 죄송하고 감사해요. 힘드시고 외로우실 땐 언제든 부르시면 달려 갈께요.’ 나는 이제 아침이면 아버지를 위해 두손 모아 기도한다.
‘이젠 더 이상 초라한 가출이 아닌 화려한 아버지의 외출이 이어지기를, 그리고 아버지의 소중한 하루가 해질녘의 붉은 노을처럼 따듯하고 평온한 시간들로 이어지기를.

▲ 최명천(산남대원1차) 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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