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마을신문 창간 10주년 특별기획
사진으로 보는 우리동네
두꺼비마을신문에서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사진으로 보는 우리동네’라는 제하로 연재를 시작한 다. 사진에 담긴 동네의 기억을 기록하기 위함이 다. 그 첫 번째로 산남동 행정복지센터 정문에 보관되어 있는 현판이다. 〔편집자의 말〕


우리동네의 기억 ①
산미분장동 현판

 

 

산남동 행정복지센터에 가면 ‘산남동 역사 유물’이라는 설명을 단 산미분장동 현판이 있다. 산미분장동은 ‘산남동-미평동-분평동-장성동-장암동’의 줄임말이다. 산미분장동은 1992년 6월 1일부터 2007년 12 월 31일까지 청주시의 행정동이었다. 산미 분장동은 2007년 2월 28일 5만 명을 돌파하면서 분동의 조건을 갖추었고, 2008 년 1월 1일을 기해 산남동(산남동-미평동 -분평동 일부)과 분평동(분평동-장성동 -장암동)이라는 두 개의 법정동으로 구획되었다.
‘산남’이라는 명칭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시행된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남주내면의 산직리, 신곡리 일원과 탑동리, 분동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청주군 사주면 산남리’라 명명했던 것이다. 해방 후인 1946년 청주 군이 청원군으로 개칭되어 청원군 사주면 관할이 되었으며, 1963년 청원군에서 청주 시로 편입됨에 따라 산남동으로 개칭되어 산미분수곡동이 되었다가, 수곡동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산미분장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산남 3지구 택지 개발이 준공된 이후 인구가 늘어나자 2008년에 지금의 산남동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산남동 행정복지센터는 이미 유물이 된 사진 속의 ‘산미분장동’ 시절부터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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