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초는 휴일이 많아서 즐겁다. 1991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된 국군의 날까지 있었다면 10월 초순은 휴일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2019년 한글날은 수요일로 한 주의 중간에 위치 해있다. 그래도 훌륭한 위치선정 이다. 한글날을 맞이해 단골로 등장하는 뉴스들이 있다. 은어와 약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맞춤법을 자주 틀리거나 하는 사회 현상을 꼬집는다. 매년 세종대왕은 무덤에서 일어나신다. 우리나라의 문맹율은 2.1% 라고 한다. 단일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로 구성하는 표음문자는 배우기도, 사용하기도 쉽다. 과연 문맹률을 이 정도로 낮춘 이유에 는 언어 접근의 용이함이 가장 큰 이유라 할수 있다. 무한에 가까운 표현력과 소통의 기술을 얻은 우리는 이쯤에서 세종대왕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실질 문맹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모르는 단어 없이 문장을 읽고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인데 상대적으로 독서경험이 부족했던 노년층에서 주로 나타났고, 최근에는 10 대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부실한 교육, 열악한 노동환경, 넘쳐나는 정보 등 사람들이 문장을 멀리하게 된 이유는 너무나 많다. 백만 가지 이유를 모두 열거할 수 없으나 문해력을 잃음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질문맹에 대한 단상을 가장 쉽게 확인할수 있는 곳은 인터넷이다. 근래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라 할 수 있는 것은 페미니즘, 인권, 유명인에 대한 주요 이슈일 것이다.
글이 아무리 훌륭해도 논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글에 쓰여진 상징적인 단어 몇 개로글 전체를 오독하거나 글쓴이의 전적을 근거로 신뢰성을 포기한다. 세줄 요약, 카드 뉴스 같은 방법은 우리가 정보 습득을 얼마나 피곤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정보의 공유 속도만큼 언어의 교환도 빠르고 은어와 같이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단편 적인 생각이 모인 곳은 특정 세력의 가벼운 부채질만으로도 쉽게 정체성이 흔들리며 관 심도 쉽게 사라져 버린다.
시간이 많아도 습관이 형성되지 않으면 할수 없는 책 읽기는 이 현상을 해결하는 결론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그 이상으로 문장은 우리 일상 가까운 곳에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안내문, 약봉투의 투약지시,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현수 막들까지 특히 생활에 밀접한 것이라면 주의 깊게 읽고 뜻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 까. 본인이 읽은 것을 바탕으로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싶다면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는 문해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최소한 세상에 속지는 않게 될 것이다.

▲ 김학철 사회복지사 (혜원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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