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다녀와서

▲ 안중근 의사 동상
▲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내부
▲ 안중근 의사 어머니

중국 탐방 2일차,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단순히 안중근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사람’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안중근 의사의 대표적인 업적은 이토 히로부미 사살이겠지만, 그 사실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저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선통감부의 초대 통감을 쏴 죽인그 용감하고 기개 넘치는 의거를 우리는 당연하단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기념관에 들어가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지나치면,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 보인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 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당당했다던 안중근 의사다운 유언이었다. 대한독립을 위해 천국에서도 힘쓰며 독립의 순간을 기뻐하겠다는 안중근 의사의 결단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왼손 약지 한 마디를 잘라 피로 완성한 태극 기를 들고 동맹을 결성했던 안중근 의사의 각오를 감히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모친 또한 독립운동에 헌신 했던 용감한 여성이었다 한다. 사형을 선고 받은 안중근에게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구차 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으라.’라고 전하 였다. 안중근 의사의 강인함과 대담함은 모친을 닮은 것일까. 안중근 의사의 모친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전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그 말을 전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나에게는 아득히도 먼 것이었다.
기념관 안쪽에는 안중근 의사가 의거했던 하얼빈 역의 모습을 볼 수 있게 유리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얼빈 역을 찍으면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면을 생각하니 그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 했다. 안중근 의사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토 히로부미를 쏘고 나서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안중근 의사의 마음속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 때의 아픔을 모르는 나는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안중근 의사를 모른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모른다. 우리는 일본의 강제 점령의 아픔을 모른다.
아무리 그 때의 아픔을 공부한다 한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우리는 그 시절을 절대로 공감할 수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알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아는 것은 힘이라 한다. 겪어 보지 못했다면,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 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안중 근을,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애국심을, 일제강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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