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청주에서 연변 으로, 구룡산에서 백두산으로’라는 주제로 마을의 청소년들과 함께 동북 역사생태문화탐방을 다녀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북아 대륙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친 현장을 답사하고 중국문화도 경험해보자는 취지였다.
인솔자 포함 25명의 탐방단은 먼저 중국 동북의 심장부인 하얼빈으로 향했다. 일본 군국 주의 만행의 역사적인 현장 731부대와 안중근 의사의 의거의 현장 - 하얼빈역 안중근의사기 념관을 탐방했다. 그리고 하얼빈의 성소피아성 당, 중앙대가(中央大街), 관동고항(關東古巷)에서 근대 시기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의 한복판에 있던 하얼빈의 역사를 체험했다.
이튿날 점심에 탐방단은 기차 타고 만주벌판 (동북평원)을 달려 동포들의 자치 지역인 연변 조선족자치주 연길(延吉)시로 달려갔다. 다음날 일정은 백두산으로 가야했으나 일기 상태가 좋지 않아 도문(圖們)의 두만강과 봉오동 전적 지, 용정(龍井)에 있는 윤동주 생가, 간도(間島) 영사관터로 여정을 바꾸었다. 때마침 국내에서 영화 ‘봉오동 전투’가 상영되던 터라 북-중 접경지 두만강과 봉오동 전적지에서 탐방단은 1920년대 당시의 항일 투쟁 상황을 더욱더 실감 있게 상상할 수 있었다. 탐방단은 용정의 명동촌에 있는 명동학교에서 학교종도 울려보고, 시인 윤동주가 유소년시절에 걸었을 골목길을 따라 시인이 살던 생가에서 시인의 시를 읊고 노래하기도 했다.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은 실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태풍 ‘레끼마’의 영향으로 동북의 백두산 일기도 변화무쌍했던 것이다. 탐방단이 백두산첫 마을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에 밝은 달과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어 백두산 등정에 문제없을 거라 안심했으나 다음날 아침에 비가 내려 백두산 출입 자체도 불투 명한 상황이 되었다. 탐방단의 소원이 통했는지 백두산 출입도 가능해졌고 천지(天池)에 오 르는 것도 가능해졌으며, 운무 가득한 천지에서 천지의 얼굴을 보는 기쁨도 느껴보기도 했다. 마지막 날 중국 최초의 소수민족 대학이자 동북 지역의 명문인 ‘연변대학교’(延邊大學)’를 현지 교원의 안내로 탐방한 후 연길 국제공항 에서 청주로 돌아왔다.
이번 여정에서 탐방단은 새삼 동아시아의 평화와 동북아로 뻗어나간 한반도의 기상을 되새 겨보았다. 21세기 시대정신인 평화와 공동 번영은 이미 100년 전 안중근 의사 등이 추구했던 것이 아닌가! 게다가 학교가 아닌 마을에서 청소년들과 마을 어른들이 함께 어우러진 뜻깊고 즐거운 여행 경험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마을 공동체의 저력은 학교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동북아로 이어지는 역사문화탐방에도 발휘되었던 것이다. 그건 시인 윤동주가 발견한 ‘새로운 길’과도 같았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1938.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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